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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31(금),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바울의 시선, 행전 17;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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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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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31(금),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바울의 시선, 행전 17;22-34

 

사도행전 17:22-34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였으니,

29 그런즉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성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 하니라.

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내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이 아덴(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도시는 철학과 예술, 사상이 발달한 고도의 문명 중심지였지만, 

동시에 수많은 신상과 제단들로 가득한 우상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영적 무지와 헛된 종교심을 보며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의 영혼은 그들의 잃어버린 상태에 대한 거룩한 부담으로 가득했습니다.

 

바울은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논쟁했고, 시장에서는 날마다 사람들과 토론했습니다. 

그러다 철학자들, 특히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사람들에게 불려가 

아레오바고라는 회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존중하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겠다”라는 그의 말은, 

복음을 단순히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번역하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창조주 하나님, 인간의 존재 목적,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우상에게 예배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며,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실 필요가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명하셨다”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복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했고, 어떤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다시 듣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를 믿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반응을 보여줍니다. 

즉, 복음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고, 

그들의 태도에 따라 갈라지게 만드는 진리입니다.

 

바울은 결과보다 순종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덴 사람들처럼 세련되고 지적인 이들에게도 복음은 여전히 “부활”이라는 걸림돌이었지만,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향한 부담감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이 시대의 아덴 한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직장, 학교, 이웃, 거래처, SNS 속 사람들까지도 각자의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의 외형은 평안해 보여도, 영혼은 여전히 길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영혼에 대한 거룩한 민감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자리—그 관계, 그 일상—에 보내셨습니다. 

복음의 통로로 서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 영혼을 더 자각하게 하소서. 

잃어버린 자들의 구원에 대한 부담을 제 안에 심어 주소서.”

 

결국 바울의 아덴 설교는 한 사람, 두 사람의 회심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씨앗이 뿌려지는 시작점이었습니다. 

복음은 언제나 그렇게 역사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당장의 반응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신다는 믿음입니다.

 

바울의 영혼은 우상 숭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전하며 부활의 예수를 선포했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복음을 향한 그의 순종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에 대한 부담이 있는 사람만이 잃어버린 세상을 볼 수 있고, 

그 부담이 결국 우리를 복음 전도의 자리로 이끌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