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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1.30(주)·세례 요한

  • 최고관리자
  • 2025-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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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19-28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가 너를 보냈기에 우리가 답할 것을 주게 하겠느냐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있었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는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본문 해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시대에 그 누구보다 먼저 그분을 알아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특권과 배경, 능력을 단 하나도 자기 이름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고, 많은 이들이 그의 설교에 감동하여 광야로 나왔지만, 

요한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스포트라이트를 조금도 즐기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기대를 자기에게 머물게 하지 않고, 모두 예수께 돌려보냈다.

요한은 스스로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불렀다.

소리는 길지 않다. 소리는 잠시 울리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그 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은 남는다.

요한은 자신이 바로 그런 존재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길이 아니다. 나는 길을 여는 소리일 뿐이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었다.

 

요한은 자신이 빛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빛으로 이끄는 하늘의 별처럼 살았다.
자신을 낮추어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부족하다는 고백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경외의 고백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신앙의 길에서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인정받고, 내가 기억되고, 내 소리가 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복음은 역설적으로 말한다.
나를 지울 때 예수님이 드러나고, 나는 사라질 때 오히려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다.

세례 요한은 잠시 울렸다가 사라지는 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을 예수님께 돌려놓았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울림은 역사가 기억하는 영원한 울림이 되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은 이것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울고 있는가?
나의 소리는 나를 향하게 하는가, 예수님을 향하게 하는가?

우리가 하는 말과 선택, 헌신의 방향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순간, 

우리의 작은 울림은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방향을 틀게 하는 결정적 소리가 될 수 있다.

세례 요한처럼 “빛을 향한 소리”로 사는 사람.
그것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삶이다.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께 옮겨놓는 소리로 살기를 결단하자.

그 소리 하나로도 하나님은 세상을 흔드실 수 있다.

 

각주.

요단강 동편의 베다니는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거주했으며, 세례 요한이 공동체를 이룬 에세네파의 일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요단강 부근에는 여러 베다니가 있어 동편 배경이 정확한 지형으로 또는 다른 중동의 명칭이 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님의 오심 직전 강 건너편의 베다니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