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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2(화)·마리아(예수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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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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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11

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되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본문 해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 예수님의 영광을 여는 믿음의 길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만남이 삶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자리였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면서도,
그분의 신비와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전적인 신뢰에서 시작되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순간,
마리아는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다 알지 못했지만
그분이 선하게 일하실 분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갔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직 내 때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마리아는 한 걸음 물러서지 않고 하인들에게 말한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마리아의 순전한 신뢰의 고백이다.

예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실지 몰라도,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옳다는 믿음.
그분이 개입하시면 상황은 반드시 변한다는 확신.

마리아의 이 믿음은 결국 예수님의 첫 표적,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여는 문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요한복음이 기록한 첫 번째 메시지이다.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자에게

주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통해 일하신다.

 

 

대림절에 마리아가 우리에게 주는 질문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에,
마리아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나는 그대로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어도, 그분의 때와 방식을 신뢰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에 등장한 수많은 사람 중
참된 만남을 통해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한 사람들이었다.
마리아 역시 그들의 첫 번째 증거이다.

그녀는 예수님을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말씀하시는 그대로’따르는 삶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여는 믿음의 자리에 서 있었다.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님의 영광을 여는 열쇠”였다

요한복음은 늘 우리에게 묻는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이해하려는 만남인가?

조건을 따지는 만남인가?

아니면 마리아처럼 ‘그대로 하라’는 신뢰의 만남인가?

 

대림절을 보내는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으로
그분의 영광이 우리 삶에 드러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의 만남도

마리아처럼 신뢰와 순종으로 열리는 만남이 되길 바란다.

 

보충.

유대인의 정결 예식은 일상 속에서 부정한 상태가 되는 것을 피하고, 

부정해졌다고 여길 때 다시 정결하게 되기 위해 시행하던 종교적 씻음 의식이다. 

이 예식은 본래 율법에 뿌리를 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상들의 전통(유전)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이나 장터에서 돌아온 후와 같이 

부정이 묻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마다 반복적으로 물로 씻는 행동을 했다. 

부정이 손에만 묻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뿐 아니라 

그릇, 단지, 주전자, 심지어 침상까지도 씻었다. 

이러한 정결 예식은 단순한 위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적·종교적 정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의례였으며, 

마가복음 7장에서 이 전통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