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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10(수) 간음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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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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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1–11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본문 해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계속 등장하지만, 그 만남의 결말은 하나로 향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참된 만남을 통해 새 생명을 얻고, 어떤 이는 불완전한 만남 속에서 흔들리다가 결국 제자의 길에 선다. 

그러나 어떤 이는 거짓된 만남에 머물며 욕망에 사로잡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는가—이것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진리이다.

 

요한복음 8장 1–11절은 이 세 부류를 한 장면 속에 집약해 보여준다.

 

첫째, 정죄하는 자리에 머문 사람들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들은 율법을 들었으나, 그것을 생명이 아니라 공격의 무기로 사용했다. 

여인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술책이었다. 

율법의 빛은 자신에게 비추지 않았고, 돌은 늘 타인을 향해 있었다.

예수님은 단 한 문장으로 모든 위선을 무너뜨리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한마디 앞에서 손의 돌은 힘을 잃고, 사람들은 자기 죄와 마주하며 뒤로 물러난다.

예수님의 말씀은 상처를 내리꽂는 칼이 아니라, 숨겨진 죄를 드러내어 정죄를 멈추게 만드는 빛이다.

 

두번째, 죄에 묶여 있던 사람 — 간음하다 잡힌 여인

여인은 죄 가운데 있었고, 부끄러움과 절망 앞에서 아무 변명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인의 인생을 결정한 것은 ‘죄의 깊이’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마주한 예수님이었다.

예수님은 두 가지를 선포하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값싼 용서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은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짐이 아니라 능력을 주시는 부르심.

 

은혜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떠날 힘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세번째, 죄인을 살리시는 예수님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

이 이야기의 중심은 바리새인도, 여인도 아니다. 예수님이다.

그분은

정죄의 돌을 내려놓게 하는 진리이며,

쓰러진 죄인을 일으키는 생명이며,

죄에서 새로운 삶으로 걸어가게 하시는 길이다. 

 

대림절은 바로 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정죄를 멈추게 하시고, 죄에 눌린 우리를 일으키시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 본문은 우리에게 결론처럼 묻는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정죄하는 마음으로?

죄에 눌린 절망의 자리에서?

아니면 은혜와 새 생명으로 부르시는 주님 앞에서?

 

예수님을 깊이 만난 사람만이

정죄를 내려놓고, 죄에서 일어서며,

새로운 삶으로 걸어갈 수 있다.

 

대림절에, 우리가 이 예수님과의 참된 만남을 다시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의 용서는 죄의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일으켜 세우시는 구원의 능력이다(롬 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