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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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13(토) 나사로, 요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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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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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11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가밀러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되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기 위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본문 해설

 

말하지 않아도 증언이 되는 사람

대림절은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요한복음 12장에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설교도 하지 않고,
간증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려온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난 그 사람,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이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인다.

“복음은 반드시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어떤 삶은 그 존재 자체가 복음이 된다.”
 

 

나사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증거였다

요한복음 12장 9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거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만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변화된 한 사람의 삶을 보러 왔다.

 

나사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이렇게 외친다.

“나는 죽었었다. 그런데 지금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예수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설명 이전에 현실이고,
논증 이전에 생명이다.

 

진짜 표적은 기적이 아니라 사람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을 찾는다.
눈에 보이는 사건, 놀라운 능력, 극적인 순간을 원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방향을 바꾼다.

기적은 끝이 아니다.
기적은 사람을 향해 열리는 문이다.

살아 있는 나사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진짜 표적은
무덤에서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무덤에서 나온 이후의 삶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 자체가 복음이다.
변화된 삶은 가장 강력한 증언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숨길 수 없다

나사로는 의도적으로 증인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 거기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사람들을 예수께 이끄는 자리였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삶을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질문이 되고,
그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된다.
 

 

오신 예수를 증언하는 삶

대림절은 아기 예수가 오신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이지만,
동시에 오신 예수가 지금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를 묻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을 살리신다.
여전히 삶을 바꾸신다.
그리고 여전히 나사로 같은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도 세상은
설명보다 실재를 보고 싶어 한다.
논쟁보다 변화된 삶을 보고 싶어 한다.

 

나는 어떤 증인인가

나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은 사람인가.

아니면
말은 적어도
예수님을 만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인가.

 

나사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왔다.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도
그런 증언이 가능하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관계 속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살아 있는 표적이 된다.

 

기적의 목적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다(요 20:31). 

나사로의 존재는 복음의 능력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하게 드러내는 표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