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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13(토) 나사로, 요 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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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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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2:1–11
본문 해설
대림절은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이지만,
동시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요한복음 12장에는
아주 특별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설교도 하지 않고,
간증도 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몰려온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난 그 사람, 나사로를 보기 위해서이다.
“복음은 반드시 말로만 전해지지 않는다.
어떤 삶은 그 존재 자체가 복음이 된다.”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거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으러만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변화된 한 사람의 삶을 보러 왔다.
나사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이렇게 외친다.
사람들은 흔히 기적을 찾는다.
눈에 보이는 사건, 놀라운 능력, 극적인 순간을 원한다.
기적은 끝이 아니다.
기적은 사람을 향해 열리는 문이다.
살아 있는 나사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걸어 다니는 모습이었다.
진짜 표적은
무덤에서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무덤에서 나온 이후의 삶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 자체가 복음이다.
변화된 삶은 가장 강력한 증언이다.
나사로는 의도적으로 증인이 되지 않았다.
그는 “사역”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예수님을 만난 사람으로 거기 앉아 있었을 뿐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기 삶을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질문이 되고,
그 삶이 복음의 통로가 된다.
대림절은 아기 예수가 오신 사건을 기억하는 절기이지만,
동시에 오신 예수가 지금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를 묻는 시간이다.
여전히 사람을 살리신다.
여전히 삶을 바꾸신다.
그리고 여전히 나사로 같은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다.
오늘도 세상은
설명보다 실재를 보고 싶어 한다.
논쟁보다 변화된 삶을 보고 싶어 한다.
아니면
말은 적어도
예수님을 만난 흔적이 남아 있는 사람인가.
나사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왔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그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살아 있는 표적이 된다.
기적의 목적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이다(요 20:31).
나사로의 존재는 복음의 능력을 가장 단순하고 강력하게 드러내는 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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