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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묵상: 12.15(월) 대제사장 안나스, 요 18:13-21

  • 최고관리자
  • 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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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13–21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본문해설

 

이미 결론을 정한 질문

안나스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은 묶여 계셨다.
그러나 그날 밤, 진짜 묶여 있던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안나스의 마음이었다.

 

안나스는 유대 종교 체계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그는 율법을 알고 있었고, 성전을 운영했고, 신앙의 질서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진리를 수호하는 자”였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진리를 향한 질문이 아니었다.

 

안나스는 예수님께 묻는다.
제자들과 가르침에 대하여 말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그 질문은 배우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을 정당화할 증거를 찾기 위한 질문이다.

 

예수님은 그 의도를 알고 계신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으신다.
변명하지 않으신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드러내 놓고 말하였다. 은밀히 말한 것이 없다.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이 말씀은 단순한 해명이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요약하는 선언이다.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빛 가운데 있었다.
사람을 조종하거나, 두려움으로 묶거나, 뒤에서 조작하지 않았다.
숨김이 없었고, 왜곡이 없었으며, 권력의 언어가 아니었다.

 

안나스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었다.
그는 성경을 알고 있었고, 종교적 지식은 누구보다 풍부했다.
문제는 마음의 방향이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자기 체제를 지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 틀 안에서 예수님을 재단하고 있었다.

 

진리를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많은 질문을 던져도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빛 앞에 서 있으면서도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우리는 과연 어떤 질문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배우기 위한 질문인가, 아니면 이미 정한 결론을 지키기 위한 질문인가.
말씀 앞에 서 있지만, 혹시 마음속에서는 이미 판결을 내려놓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은 오늘도 빛 가운데 서 계신다.
그분의 말씀은 지금도 공개적이고 분명하다.
문제는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 앞에 서는 우리의 마음이다.

 

종교적 지위가 영적 분별을 보장하지 않는다. 

마음이 완악하면 진리를 보지 못한다(막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