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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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9(월) 이름을 부르시고, 증인으로 세우시는 하나님, 사 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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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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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4:1-8

1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2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5   한 사람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또 한 사람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기를 부를 것이며 

     또 다른 사람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그의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7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

8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신이 있겠느냐 과연 반석은 없나니 다른 신이 있음을 내가 알지 못하노라

 

 

 

부르시는 하나님! 

 

“내가 택한 나의 종 야곱아, 내가 선택한 이스라엘아”(1)

 

이 말씀은 가치 평가의 선언이 아닙니다.

야곱이 뛰어나서 택하셨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름을 부르시며

“너는 나에게 속한 존재이다”라고 정체성을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종’이라는 표현은 억압의 언어가 아니라

사명을 맡긴 언약적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소유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열방 앞에 드러낼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또한 ‘야곱’과 ‘이스라엘’을 함께 부르시는 것은

야곱의 삶을 통해 나타난 욕망, 연약함과 하나님과의 씨름, 

실패와 변화의 전 역사를 포함해서 하나님게서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완성된 모습만이 아니라

과정 전체를 끌어안고 부르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문장은

이스라엘이 누구인가를 말하기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능력이 있어서 부르시거나, 

흠이 없어서 세우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강한 민족이 아니라 작고 약한 민족을 택하심으로

구원이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드러내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너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역사 속에서 신실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특권의 선언이 아니라

섬김과 증인의 사명에 대한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 한 민족을 택하셔서, 모든 민족을 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름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부르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음성 앞에 서 있는 백성입니다.

 

 

부으시는 하나님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3)

 

하나님은 마른 땅에 물을 붓듯 메마른 백성에게 성령을 부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약속이 아닙니다.

이 약속은 자손에게 흘러가고, 후손에게 이어지며, 결국 열방으로 확장되는 생명이야기 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의 근원이 아니라, 생명이 흘러가는 통로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지를 묻고 살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게서 특별히 선민으로 택하셨다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라, 소속에 대한 신앙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민족으로만 묶인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6)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만 다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열방의 시작과 끝을 붙드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성취를 먼저 묻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따지시지도 않습니다. 

단지, “너는 내게 속한” 라고 말씀하시고 

“너희는 내 증인이다”(7)라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영원한 백성을 세운 이후로 나처럼 외치며 알리며 

나에게 설명할 자가 누구냐 있거든 될 일과 

장차 올 일을 그들에게 알릴지어다”(7)

 

증인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본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증인은 들은 것을 숨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은 열방 앞에서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증언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 역시 그 증언의 자리로 다시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열방을 한 가족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상처와 실패를 넘어 

하나님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모으시고 하십니다.

 

오늘 나는 어떤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오늘 나는 어떤 소속을 붙잡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지었다”

“너는 내 증인이다” 

이스라엘과 열방을 하나로 묶으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가족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하루와 말과 선택이 조용한 증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