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60109(금) 포로의 도시에서 배우는 하나님나라, 렘 29;7-8
- 최고관리자
- 202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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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예레미야 29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던 시기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벨론 포로는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신앙의 근거가 흔들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성전이 없고, 제사가 없고, 언약의 땅이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이 상황을 실패로 해석했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황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포로 생활을 견디라는 위로가 아니라, 포로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라는 소명입니다.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7절)
7절의 핵심은 ‘피하라’가 아니라 ‘구하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방관자가 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억지로 머물게 된 성읍의 평안을 적극적으로 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단순한 질서나 안정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이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읍의 평안과 자기 백성의 평안을 연결시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 성읍의 평안이 너희의 평안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8절)
8절은 이 명령을 왜곡시키는 유혹에 대한 경고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현실을 부정하며,
그러나 하나님은 환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늘 불편한 현실을 통과하며 이루어집니다.
이곳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언젠가 벗어나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깊이 뿌리내리기를 미루고, 책임을 줄이고, 마음을 닫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9장의 말씀은 우리의 태도를 정면으로 흔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자리에서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나의 신앙이 도피적 신앙인지, 파송된 신앙인지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이유로 세상을 멀리하려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도시를 위해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를 묻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엔 너무 작고 연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늘 작은 순종을 통해 큰 구원의 흐름을 이어 가시는 분입니다.
포로기의 일상속에서 이루어진 이 순종이, 훗날 귀환과 회복의 길을 열었습니다.
먼저 세상 한가운데에 평안을 심는 사람으로 세우시는 분입니다.
도시의 유익을 추구하라는 명령은 추상적인 윤리 명령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하루의 리듬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는 아침, 낮, 저녁, 밤에 하나님의 말씀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우리는 종종 “여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서 신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도시의 유익을 추구하는 첫 걸음은,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결단일 수 있습니다.
떠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아침을 시작할 때 내가 상황을 바꾸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낮은 도시를 평가하지 않고, 도시를 감당하는 신앙입니다
도시의 문제들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영역에서 신뢰를 지키는 사람으로 살아가겠다는 뜻입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되 증오로 대응하지 않는 선택,
이 모든 것이 도시의 평안을 쌓아 올리는 낮동안에 우리가 해야할 순종입니다.
도시는 낮 동안 반복되는 작은 선택들로 방향이 정해집니다.
오늘 나는 도시를 어떻게 대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불평이 많았는지, 기도가 많았는지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셨을까”를 묻는 사람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시선으로 이곳을 바라보게 해 달라고 구하는 시간이 됩니다.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면 한 주의 마무리가 찾아옵니다.
이때는 도망자가 아닌 파송된 사람으로 살았는지를 묻는 시간입니다.
도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숨을 쉬도록 부름받은 공간입니다.
나는 포로의 몸은 벗어났을지 몰라도 포로의 마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 도시 안에서 누구로 살 것인가를 먼저 묻고 계십니다.
우리는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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