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2026.4.9(목), 고난에 참여함, 벧전 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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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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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9(목), 고난에 참여함, 벧전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12절)

고난이 오면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뭘 잘못했나?”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건가?”

하지만 베드로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원래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의 길을 걸으셨고,

제자들도 그 길을 걸었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는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정말 예수님의 길 위에 서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주일 설교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우리는 부활만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성경은 고난, 죽음, 부활의 길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난은 신앙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뻐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13절)

어떻게 고난 속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고난 자체가 좋아서 기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즐겁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고난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말은

내가 그냥 힘든 일을 참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그 길에

나도 함께 서 있다는 뜻입니다.

 

주일 설교에서 빌립보서 3:10을 설명하시면서

바울이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라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 길을 실제로 살아보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바로 그 의미가 여기에도 담겨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14절)

보통 우리는 치욕을 당하면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낍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무시당하고, 힘든 일을 겪으면

하나님이 나를 떠나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신다’고 말합니다.

고난의 자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진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롬8:11)

부활의 능력은 문제가 없는 삶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도 성령께서 우리를 붙드시고

무너지지 않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실 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만 묻지 말고

“하나님이 이 자리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가?”를 물어야 합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미리 가볍게 통과한 사건이 아니라

죽음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위에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의 사건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누리는 삶은 고난을 피하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삶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길이 죽음을 이기는 길이었고

부활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 속에서 내 뜻만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선택할 때 부활의 능력을 실제로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