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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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1(화): 서로 돌아보아, 히 10:23-25

  • 최고관리자
  • 2026-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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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1(화) 묵상

 

히브리서 10:23-25

23절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절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3-25은 단순히 “주일예배에 빠지지 말라”는 정도의 권면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공동체가 서로를 어떻게 붙들어 주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배경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어려움과 압박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0:32-34을 보면 그들은 과거에 고난을 견뎠고, 비방과 환난을 당했으며, 심지어 재산을 빼앗기는 일까지 경험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일부 성도들에게는 신앙생활에서 뒤로 물러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에는 반복되는 권면이 있습니다.

“뒤로 물러가지 말라.” “믿음을 끝까지 붙들라.” “서로를 붙들어 주라.”

10장 23-25절도 바로 이런 상황에서 주어진 말씀입니다. 특히 바로 앞부분인 10:19-22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나아가자”(22절) “굳게 잡자”(23절) “서로 돌아보자”(24절)

즉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개인적 신앙에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믿음을 책임지는 공동체적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3절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서 중심은 우리의 의지가 강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붙들 수 있는 이유는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기” 때문입니다. ‘미쁘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믿을 만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성도들이 고난 가운데 흔들릴 수 있습니다. 상황은 변할 수 있고 감정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근거는 “내가 얼마나 잘 버티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신실하신가”에 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에도 중요합니다. 신앙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흔들리는 사람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함께 붙드는 곳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24절에는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서 “돌아보다”는 단순히 관심을 갖는다는 정도보다 강한 표현입니다. 상대방의 상태를 주의 깊게 살피고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교회에 모일 때 질문이 달라져야 합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받을까?”만이 아니라 “오늘 내가 살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힘들어하고 있는가?” “누구의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와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전에만 모이지 않고 집에서도 함께했습니다. 함께 먹고 이야기하며  서로의 형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서로 돌아보는 일은 가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사람을 멀리서 보면 얼굴만 보이지만 가까이 함께 살아가면 형편이 보입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우리말 성경의 “격려하다”는 표현도 중요합니다. 원문의 뉘앙스는 단순히 부드럽게 위로하는 것보다 서로를 자극하고 일깨운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특별한 것은 사랑과 선행을 무엇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은 단지 지식을 쌓는 시간이 아닙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말씀 때문에 더 사랑하고 더 선하게 살아가도록 서로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 공동체에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를 드릴수록 더 용서하게 되고, 

함께 말씀을 들을수록 더 나누게 되고,

교제할수록 다른 사람의 아픔에 민감해져야 합니다.

모임이 많아졌는데 사랑이 자라지 않는다면 히브리서가 말하는 모임의 목적을 놓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25절은 가장 잘 알려진 부분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이 구절을 흔히 “예배에 빠지지 말라”는 의미로만 이해하지만 문맥은 더 넓습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이 공동체의 모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박해나 낙심, 신앙적 피로 등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염려하는 것은 단순히 출석률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떠나 혼자가 되면 신앙을 끝까지 지키기가 훨씬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모였는가?”가 아니라 “모여서 무엇을 하는가?”입니다.

앞절과 연결하면 답이 분명합니다.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서로를 권면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즉 모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서로를 믿음 안에 세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오직 권하여”라는 말에는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한다는 뜻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든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낙심하고, 어떤 사람은 의심하고, 어떤 사람은 삶의 무게 때문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때 공동체가 하는 일은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믿음의 자리로 일으켜 세우는 것입니다. 

“같이 가자.” “포기하지 말자.” “하나님은 여전히 신실하시다.”

이것이 교회가 서로에게 해 주어야 할 역할입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그 날”은 궁극적으로 주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완성의 날을 가리킵니다. 흥미로운 것은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것이 개인적인 신비 체험이나 특별한 예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 모이고, 더 서로를 살피고, 더 사랑하고, 더 격려하라고 합니다. 성경적 종말 신앙은 공동체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를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10:23-25과 주일설교 본문인 사도행전 2:42-47은 아주 잘 연결됩니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어떻게 모였는가를 보여 주고, 히브리서는 왜 모여야 하는가를 설명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전에서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의 필요를 발견하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말하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는 말씀은 초대교회의 집 모임에서 실제 삶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교회는 단순히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바라보고 붙들어 주는 공동체입니다.

 

묵상할 때는 이 질문이 가장 좋겠습니다.

“나는 교회에 모일 때 누군가에게 어떤 믿음의 힘이 되어 주고 있는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교회에는 서로의 형편을 알 만큼 가까이 살아가는 관계가 있는가?”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