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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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13(목) 삶과 집을 여는 신앙, 로마서 12;9-13

  • 최고관리자
  • 202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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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9-13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로마서 12:9-13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마음속의 좋은 감정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필요를 채우고, 어려움에 함께하며, 자신의 삶과 집을 다른 사람에게 열어 주는 사랑입니다. 특히 13절의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가 집에서 떡을 떼며 서로의 필요를 채웠던 모습과 깊이 연결됩니다.

 

본문의 배경 복음에서 삶으로

로마서는 크게 보면 1-11장과 12-16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12장부터는 그 복음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합니다. 그 전환점이 로마서 12:1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몸”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생각이나 마음의 변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 시간, 물질, 관계, 일상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12장 9절부터 바울은 아주 실제적인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섬기고, 소망하고, 인내하고, 기도하고, 나누고, 대접하라고 합니다.

복음이 삶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9절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여기서 ‘거짓이 없는 사랑’은 문자적으로 위선적이지 않은 사랑,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반갑게 인사하지만 그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형식적인 사랑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어서 말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조건 좋은 말을 해주는 감정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악은 미워하고 선을 붙드는 사랑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상대방의 진정한 유익을 구합니다.

 

10절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여기서 바울이 사용하는 표현에는 가족적인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이는 집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형제와 자매가 된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의 집 모임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혈연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출신도 다르고 사회적 신분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때문에 한 식탁에 앉아 서로를 형제자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랑은 “저 사람이 나와 얼마나 잘 맞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나의 형제자매로 주셨는가?” 라는 관점에서 시작됩니다.

 

11절입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이 말씀은 앞뒤의 공동체적 사랑과 분리해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흔히 ‘주를 섬긴다’고 하면 예배나 교회 봉사를 먼저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 주를 섬기는 삶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돌보는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섬기는 일이 주님을 섬기는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12절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공동체 안에는 항상 좋은 일을 겪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뻐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환난 가운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강하지만 어떤 사람은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형편을 알지 못하면 서로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만나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기도 제목이 내 기도 제목이 됩니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는 서로의 짐을 함께 기도로 하나님께 가지고 가는 공동체입니다.

 

13절이 이번 묵상의 핵심입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여기서 ‘쓸 것’은 성도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고 하지 않습니다. 필요에 참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신명기 15장의 말씀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신명기에서는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손을 움켜쥐지 말고”, “네 손을 그에게 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열린 손이 신약의 교회 공동체에서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2:45에서는 그것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것을 나누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세 본문에는 동일한 흐름이 있습니다.

신명기 15장 손을 펴라.

로마서 12장 필요에 참여하라.

사도행전 2장 필요를 따라 나누었다.

 

13절 후반부입니다.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여기서 ‘손 대접’은 단순히 친한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기본적으로 낯선 사람, 나그네를 사랑하고 환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안전하고 편리한 숙박 시설이 많지 않았습니다. 여행하는 그리스도인이나 복음 전도자들에게 성도의 집을 열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섬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손 대접에는 상당한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식탁을 내어 주어야 했습니다. 음식을 나누어야 했습니다. 시간을 내어야 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울이 단순히 손 대접을 “하라”고 하지 않고 “힘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원문의 뉘앙스에는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정도가 아니라 환대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찾으라는 것입니다.

 

집을 연다는 것은 삶을 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집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 하나를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집은 가장 사적인 생활공간이었습니다. 그 공간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식탁에 자리를 내어 줍니다. 내 시간을 내어 줍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 사람의 필요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환대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행동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내 삶 안으로 받아들이면 사랑에는 시간과 수고와 비용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사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13은 사도행전 2:42-47의 초대교회 모습을 이해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살았습니다. 그들의 집은 자기 가족만을 위한 폐쇄된 공간으로 머물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들어왔고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지자 사람이 보였습니다. 사람이 보이자 형편이 보였습니다. 형편이 보이자 필요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필요가 보이자 자신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교의 흐름과도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집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공동체를 세상이 바라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집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데 익숙합니다. 교회에서는 만나지만 서로의 삶까지 들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알지만 형편은 모르고, 얼굴은 알지만 아픔은 모르는 관계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장은 우리에게 단순히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삶을 열라고 합니다.

내 시간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는가?

내 식탁에 다른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는가?

내 물질에 어려운 성도를 위한 몫이 있는가?

내 마음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줄 여백이 있는가?

집을 연다는 것은 결국 삶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우리를 그렇게 살아가도록 부릅니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실제로 내 시간과 물질과 공간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 주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 삶 안으로 받아들이라고 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복음으로 마음이 열리면 손이 열리고, 손이 열리면 식탁이 열리고, 식탁이 열리면 서로의 삶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12장이 보여 주는 삶과 집을 여는 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