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15(토), 세상에 보이는 교회, 요한복음 13;34-35
요한복음 13:34-35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34-35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알아보는 가장 분명한 표지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뛰어난 말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제자 공동체 안에서 살아낸 사랑이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배경 : 십자가를 앞두고 주신 말씀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낮은 위치에 있는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친히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34-35절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추상적인 사랑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신 뒤 주신 말씀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자리에는 예수님을 배반할 유다도 있었고, 곧 예수님을 부인하게 될 베드로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사람들만 모인 공동체에 사랑을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34절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사실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레위기 19:18에도 이미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롭습니까? 이어지는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의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구약에서는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면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공동체 사랑의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이 말씀을 하신 시점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집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를 향해 가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씀은 결국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좋은 감정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실패하는 제자들을 품으셨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나도 사랑하겠다”는 사랑이 아닙니다. 먼저 다가가고, 낮아지고, 섬기며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여기서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가 “서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교회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하나 됨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받았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5절에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이로써”입니다. 무엇을 통해 세상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됩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건물이나 규모, 프로그램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은 공동체 내부에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보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돌보는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를 세상이 봅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관계 자체가 하나의 복음의 증거가 됩니다.
사랑은 보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랑을 잘 설명하면 모든 사람이 알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면” 알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결국 삶에서 보여야 합니다. 누군가 외로울 때 찾아가는 것, 어려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필요한 사람과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것, 내 시간과 식탁과 공간을 내어 주는 것. 이런 행동을 통해 보이지 않는 복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설명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보여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사랑은 사도행전 2:42-47에서 실제 공동체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함께 모이고, 집에서 떡을 떼고, 서로의 필요를 살피며 자신의 것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사도행전 2:47에 나옵니다.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세상이 그들의 공동체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만 들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두 본문에는 매우 중요한 연결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은 “서로 사랑하라. 그러면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이고, 사도행전 2장은 그들이 서로 사랑했고, 세상이 그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초대교회의 삶에서 실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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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묵상한 말씀들이 결국 요한복음 13:34-35으로 모입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는 서로 돌아보기 위해 모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5장에서는 어려운 형제를 보았을 때 마음을 닫지 말고 손을 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는 성도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삶과 집을 열어 환대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58장에서는 양식을 나누고 어려운 사람을 집에 들이며 예배를 삶으로 살아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교회의 사랑은 교회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세상을 향한 증언이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합니다. 물론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말과 함께 공동체의 삶 자체가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사랑을 말하면서 서로 미워한다면 우리의 복음은 설득력을 잃습니다. 용서를 말하면서 서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복음의 능력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함께하고, 서로의 필요를 돌아보고, 자신의 것을 나누고, 용서하며 사랑한다면 세상은 질문하게 됩니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살아가게 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교회의 대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