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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1(금), 새 힘을 얻어 다시 걸으라, 이사야 40;27-31

  • 최고관리자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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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1(금), 새 힘을 얻어 다시 걸으라, 이사야 40;27-31

 

이사야 40장은 이사야서 전체에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39장에는 유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40장부터는 포로와 같은 절망적 상황에 놓인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가 전면에 등장합니다. 40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힘든 것은 단순히 환경이 어려워졌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이 길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잊으신 것은 아닌가 하는 영적인 낙심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27절에서 이스라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내 형편을 모르시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가?”,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라는 의미입니다. 고난이 오래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보다 먼저 하나님의 관심을 의심하게 됩니다. 바로 그런 백성에게 이사야는 “조금만 더 힘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27절에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내 길”입니다. 성경에서 ‘길’은 단순히 사람이 걸어가는 도로만을 의미하지 않고 한 사람의 삶과 형편, 그가 걸어가는 인생 전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길이 하나님께 ‘숨겨졌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보고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계속되는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신다면 왜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가? 우리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기도했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때, 오랫동안 같은 문제를 가지고 살아갈 때, 다른 사람은 잘되는 것 같은데 나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느낄 때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보고 계시는가?” 그런데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상황부터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상황에서 하나님께 돌립니다.

 

28절에서 이사야는 질문합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수없이 들어왔던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때로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던 하나님을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잊어버릴 때 찾아옵니다. 그래서 낙심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정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고 있는지를 다시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하나님을 세 가지 표현으로 소개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 이스라엘의 현실은 흔들리고 있지만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포로가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무능해지신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하나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상황보다 크신 분입니다.

 

28절에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가 나타납니다.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우리는 지칩니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칩니다.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도하는 것도 지치고, 기다리는 것도 지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지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난이 오래되면 고난 자체보다 기다리는 것에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은 체력이 좋으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붙드시고 구원하시며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일에 한계가 없으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쳤다고 하나님까지 지치신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이 약해졌다고 하나님의 신실하심까지 약해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지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29절) 하나님께서 힘 있는 사람에게 더 큰 힘을 주신다고 하지 않습니다. 피곤한 사람, 무능한 사람에게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강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히려 자신의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더하신다고 말씀합니다.

30절은 인간의 한계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소년과 장정은 인간적으로 가장 힘이 넘치는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젊고 강한 사람도 결국 지칩니다.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은 내 힘으로 끝까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31절은 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앙망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기다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대하며 그분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다리는가보다 누구를 바라보며 기다리는가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고,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누군가 나를 도와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자”가 아니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화요일에 묵상한 시편 121편과도 연결됩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새 힘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을 이사야는 세 가지로 표현합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우리는 첫 번째 표현을 가장 좋아합니다.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상황이 극적으로 바뀌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달음박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걸어갑니다. 오히려 이 마지막 표현이 우리의 일상적인 신앙과 매우 가깝습니다. 

매일의 삶은 언제나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신앙생활은 한 걸음씩 걸어가는 삶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기도하고, 다시 일하고, 다시 가족을 사랑하고, 다시 사람을 용서하고, 다시 예배드리고, 다시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하나는 모든 문제를 단번에 없애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도 다시 한 걸음을 걸어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40장과 이번 주일 본문인 사도행전 3장은 ‘넘어져 있는 사람을 일으켜 다시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성전 미문 앞의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그를 메고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날 수도,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리고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말합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도행전의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얻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뛰어 서서 걸으며.” 이어서는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의 표현도 일맥상통합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앞으로 인생에서 한 번도 지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지칠 수 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찾아옵니다. 복음의 약속은 “너는 다시는 힘들지 않을 것이다”가 아닙니다. “네가 지칠 때 다시 힘을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성전 미문의 사람에게 가장 큰 기적은 돈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적이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지쳐서 기도하기를 포기했다면 다시 기도하는 것, 사람에게 상처받아 사랑하기를 포기했다면 다시 사랑하는 것, 실패 때문에 주저앉았다면 다시 시작하는 것, 신앙이 무기력해졌다면 다시 예배하고 찬송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어나 걷는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어디에서 지쳐 있습니까?

내 힘으로 버티느라 더 지쳐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없애 주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문제 속에서도 다시 걸어갈 새 힘을 하나님께 구하고 있습니까?

 

오늘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지쳐 있는 저를 아시고 다시 새 힘을 주옵소서. 내 힘으로 버티려고 하지 않고 주님을 앙망하게 하소서. 모든 문제가 사라져야만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시고, 오늘 주시는 힘으로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내딛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마침내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