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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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4(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세기 1:26-28

  • 최고관리자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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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명하여 빛과 하늘과 바다를 만드시고, 땅에 식물이 자라게 하시며, 해와 달과 별을 두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와 새와 땅의 생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이전과 다른 특별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특별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리고 27절은 이것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인간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직업이나 능력, 소유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형상은 단순히 인간의 외적인 모습이 하나님과 닮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며, 자신의 존재와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28절)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주어졌다는 사실과 세상을 돌보아야 할 사명이 함께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단지 ‘내가 누구인가’에 관한 말씀만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께 내가 원하는 모습을 이루어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더 성공하고, 인정받으며, 내가 계획한 일이 잘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목적이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인간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하는 것은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라”가 아니라 “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나는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나는 누구를 닮아가고 있는가?”를 늘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수록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야 합니다.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부모와 자녀가 닮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부부가 서로 닮아갑니다. 얼굴만이 아니라 말투와 표정, 생각하는 방식과 행동까지 닮아갑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면 우리에게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전보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품을 수 있어야 하고, 말은 조금 더 따뜻해져야 하며,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 나 자신만 생각하던 삶에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연륜은 단지 교회를 다닌 햇수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가를 통해 나타납니다.

 

신약은 우리가 누구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셨고, 소외된 사람을 품으셨으며,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고, 마침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하며, 예수님이 낮아지신 것처럼 낮아지고, 예수님이 섬기신 것처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날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의 모습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번 주일 본문인 사도행전 3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행각에 서 있는 베드로를 보았습니다. 과거의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의 뜻보다 자기 생각이 앞설 때가 많았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솔로몬의 행각에 다시 선 베드로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나자 모든 사람이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을 드러내기에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예수님께로 돌립니다. 베드로가 완벽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동안 어느덧 그의 삶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오래 바라보았더니 어느덧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간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만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 나타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예배를 마치고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 사랑이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삶 속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무엇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가치와 욕망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조금씩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을 닮아가고 있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물어보십시오. 

오늘 나를 만나는 사람은 내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될까요? 

오늘은 거창한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한 사람에게 따뜻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양보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 수도 있습니다. 그 작은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의 삶에서 조금 더 선명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묵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것은 큰 특권인 동시에 삶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표정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봅시다.

 

“주님, 저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찾아다니지 않고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 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온유함과 섬김이 나타나게 하시고, 오늘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통해 주님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