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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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27(목), 내가 행한 것같이 너희도, 요한복음 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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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27(목), 내가 행한 것같이 너희도, 요한복음 13;12-17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놀랍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 13:4)

예수님은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먼지가 많은 길을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발을 씻는 일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은 매우 낮은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예수님이 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이라고 부르는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섬김을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낮아지심으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기신 예수님께서 다시 자리에 앉으신 후 물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요 13:12)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발을 깨끗하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평생 기억해야 할 한 장면을 그들의 마음속에 남겨주셨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떠나신 후 제자들은 교회를 이끌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낮아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요 13:13)

예수님은 분명히 주님이시며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그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14절)

이것이 복음이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입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섬겨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함은 높아지심이 아니라 낮아지심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먼저 낮아져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여기에서 중요한 말은 “서로”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사람 몇 명만 섬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누군가 나를 먼저 섬겨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섬기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먼저 사과하면 나도,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하면 나도,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나도 하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먼저 자신의 발을 씻어주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일어나셨습니다. 섬김은 다른 사람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15절은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람도 하지 않는데 왜 내가, 나는 저 사람보다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쉽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우리의 기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대하셨는지, 어떻게 낮아지셨는지,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어떻게 자신을 내어주셨는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우리도 해보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 사실은 섬김에 대해 중요한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섬길 수 있습니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 나에게 고마워할 사람은 비교적 쉽게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섬김은 그것을 넘어섭니다. 섬김은 상대방이 받을 만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을 넘어,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도 주님의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날 예수님께 발을 씻김 받은 제자 가운데 베드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발을 씻기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 13:8)

베드로가 생각했던 주님의 모습과 지금 눈앞에서 수건을 두르고 무릎을 꿇으신 예수님의 모습이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난 주일 본문인 사도행전 3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행각에 서 있는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자 수많은 사람이 베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말합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그리고 모든 시선을 예수님께 돌렸습니다. 한때는 높아지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베드로가 이제는 자신을 낮추고 예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오래전 자신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덧 베드로도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섬김’이라는 말을 들으면 특별하고 큰 일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발을 씻기는 일은 당시 일상에서 필요했던 아주 평범하고 낮은 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발 씻기는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 사용한 자리를 정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먼저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바쁜 사람을 위해 작은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힘들어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조용히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일의 크기가 아닙니다. 누가 먼저 수건을 드느냐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은 “왜 아무도 하지 않지?”라고 불평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필요한 일이 보이면 자신이 먼저 일어납니다.

 

이번 주 묵상의 흐름으로 보면, 월요일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임을 묵상했습니다. 화요일에는 그 믿음이 종교적인 행위에만 머물지 않고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수요일에는 하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시선이 자신에게서 이웃에게로 향해야 한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목요일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이웃이 보이기 시작했다면 이제 내가 먼저 낮아져 섬겨야 합니다. 보는 것, 좋은 마음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셨고, 수건을 두르셨고, 무릎을 꿇으셨고,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결국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까, 아니면 먼저 섬기려고 합니까?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오늘 내가 수건을 들고 먼저 일어나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가정이나 교회, 혹은 직장일수 있습니다. 

오늘 한 가지를 정해 실천해 봅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예수님께서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섬김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