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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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31(월), 내가 찾기 전에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 출애굽기 3:1-12
- 최고관리자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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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3장은 모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는 장면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성장했지만, 동족 히브리 사람이 학대받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인 사건 때문에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그곳에서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목자로 살아갑니다. 출애굽기 3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출 3:1)
이때 모세의 나이는 약 80세였습니다(행 7:30 참조). 한때 애굽의 왕궁에서 살았던 사람이 이제는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호렙산으로 간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날도 평소처럼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한 일상 속으로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발견한 것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 먼저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놀라운 광경을 발견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2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그 광경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갑니다.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3절)
그런데 여기에서 순서를 잘 보아야 합니다. 모세가 떨기나무를 발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셨기 때문에 모세가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에서도 이 순서는 중요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내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바라보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를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모세가 떨기나무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4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께서 모세의 이름을 알고 계셨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잊힌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애굽에서의 실패도 이미 오래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는 잊힌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셨고, 그의 이름을 알고 계셨으며, 이제 그를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다시 불러내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주님을 부르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7절)
“내가 보았다.” “내가 들었다.” “내가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고통을 보고 계시는지 의심되는 순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보고 있었고, 듣고 있었으며, 알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상황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같은 문제가 계속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심을 믿는가? 라고.
하나님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통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모습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셔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과 십자가의 복음도 결국 이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신 이야기,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건져내겠다”고 말씀하신 직후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10절)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모세를 보내십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만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시는 것은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고 복 주시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찾아오신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누군가에게 보내십니다. 은혜받은 사람을 은혜의 통로로 만드십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
“내가 누구이기에.” 어쩌면 이것은 실패를 경험한 모세의 솔직한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다시 보내시자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너는 충분히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전혀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12절)
모세의 질문은 “내가 누구이기에?”였는데,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너와 함께한다.”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믿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장의 모세와 사도행전 3장의 베드로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역사를 자신에게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을 자신의 비전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이스라엘의 고통을 보셨고, 들으셨고, 내려오셨으며 모세를 불러 보내셨습니다.
40여 년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베드로를 바라보자 베드로는 말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행 3:12)
그리고 16절에서 그 모든 일의 시작점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모세에게 출애굽의 시작점이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베드로에게도 치유의 시작점은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도구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기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번 주 말씀의 제목처럼 우리의 믿음도, 사명도, 지금까지 걸어온 삶도 결국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아갔다고 생각했던 순간보다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찾아오셨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광야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셨음을 믿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시고자 하는 사람과 자리는 어디입니까?
오늘은 내가 무엇을 이루어야 할지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고백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어 보십시오.
“주님, 제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저를 아시고, 제가 주님을 찾기도 전에 먼저 찾아와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광야와 같은 시간에도 저를 보고 계셨고 제 이름을 잊지 않으셨음을 믿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라는 두려움에 머물지 않고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을 붙들게 하소서.
저의 믿음과 사명이 예수로 말미암아 시작되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저를 주님의 손에 온전히 내어드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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