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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수), 먼저 이름을 부르시는 하나님, 삼상 3;1-10
- 최고관리자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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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3장은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이 매우 어두웠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사무엘은 아직 어린아이였고 제사장 엘리 곁에서 여호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그 뜻을 계시하시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영적 상태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그들은 제사장이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그런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그 시작은 놀랍게도 화려한 장소나 유명한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서 잠들어 있던 한 어린아이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본문에는 당시 상황을 보여 주는 인상적인 표현이 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성소의 등불이 아직 타고 있었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으면 이 장면은 당시의 영적 상황과도 인상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말씀이 희귀한 시대였습니다. 엘리의 집안은 영적으로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어두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실패했다고 하나님의 역사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시대가 어두워졌다고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한 사람을 부르셔서 다시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4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어떤 일을 먼저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의 사명은 사무엘 자신에게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이 순서를 반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먼저 출애굽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신앙의 출발점은 인간의 결심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먼저입니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7절)
그런데 성경은 놀랍게도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의미라기보다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알아가는 선지자적 경험에 들어서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한 다음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아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지만 사무엘은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그가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5절)
하나님께서 부르신다고 우리가 언제나 즉시 그 음성을 알아듣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은 세 번이나 잘못 알아들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지 못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계속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 부르시고 알아듣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한 번에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보다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신앙은 내가 하나님을 한 번에 정확하게 찾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계속해서 나를 불러 주시는 하나님께 조금씩 응답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침내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9절)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10절)
신앙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먼저 보여 드리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주님, 제가 듣겠습니다” 라고 응답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말씀 묵상의 중요한 목적도 내가 원하는 답을 하나님께 받아내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3장과 이번 주일 본문 사도행전 3장에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예수님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의 베드로를 먼저 찾아오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3장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을 때 베드로는 그것을 자신의 능력이나 경건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행 3:12)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예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먼저 불러 주셨고, 제자로 세워 주셨고,
마침내 한 사람을 일으키는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위대한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이가 특별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기 전에 주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는가?”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실 수 있습니다.
내려놓으라고 하실 수도 있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분주하면 그 음성을 다른 소리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요즘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내 마음에 주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내가 원하는 말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데만 익숙하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 오늘 나의 이름을 부르신다면 나는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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