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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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4(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로마서 5;6-11
- 최고관리자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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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은 바울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앞선 1-4장에서 바울은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으며,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출발점은 우리의 선함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6-11절에서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만한 사람이 된 이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6절)
우리가 강해진 다음이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진 다음도 아닙니다.
삶을 제대로 정리한 다음도 아닙니다. “아직 연약할 때”였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울이 우리를 단순히 연약한 사람이라고만 말하지 않고 “경건하지 않은 자”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없었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오신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회개를 완성한 다음이 아니고,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된 다음도 아닙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받기 위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믿음생활을 잘해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우리가 변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막연하게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먼저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입니다.
십자가는 내가 하나님을 붙잡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사랑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현재 상황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삶이 잘 풀리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려면 환경이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감정도 변하고,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이미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힘든 순간일수록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내 상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보다 “십자가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십자가는 오늘도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신다.”고 말합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10절)
6절에서는 연약한 자, 8절에서는 죄인, 10절에서는 원수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인간이 먼저 손을 내민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서도 하나님께서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자격 없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기에도 이번 주 설교와 연결되는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게 된 것도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는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가”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깊이 알수록 우리의 신앙은 교만해지기보다 감사하게 됩니다.
로마서 5장과 이번 주일 본문인 사도행전 3장은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한 문장으로 깊이 연결됩니다.
성전 미문 앞에서 40여 년 동안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예수님께로 돌립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조차 자신의 것으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믿을 만한 사람이 된 다음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신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결단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손이 하나님을 붙잡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붙잡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잘 믿고 있는가?”만 묻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나는 얼마나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의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감정과 환경보다 십자가에서 이미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선택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에게 오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나를 붙잡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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