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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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9(수), 누군가를 품어 주는 가지, 로마서 15;1-7

  • 최고관리자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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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부터 15장 초반에서 바울은 로마 교회 안에 있었던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 사이의 갈등을 다룹니다.

특별히 음식과 특정한 날을 지키는 문제를 놓고 서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떤 사람은 신앙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판단하고 업신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1절)

신앙의 성숙은 내가 얼마나 옳은지를 증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와 다른 사람의 연약함까지 얼마나 품을 수 있는가에서 드러납니다.

 

바울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에게 먼저 책임을 요구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1절)

여기서 “담당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연약한 사람을 단지 참아 주라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그의 약함을 함께 짊어지고 받아 주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장점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약점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성숙은 연약한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부족함까지 함께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말합니다.

나무가 자랄수록 가지가 넓어지듯이 믿음이 자랄수록 우리의 마음도 넓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1절)

우리의 본성은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은 끊임없이 

‘나’에서 ‘우리’로 시선을 옮기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에게 자유가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내 편리함을 내려놓고, 

내 주장과 권리를 양보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품는다는 것은 상대방이 내게 맞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2절에서 바울은 적극적인 방향을 제시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여기서 이웃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무조건 사람의 비위를 맞추라는 뜻이 아닙니다.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라는 말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을 세워 주고 있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고 세워 줄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말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품으라고 말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예수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3절)

예수님은 자신의 편안함과 유익을 위해 살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연약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셨고, 

죄인들과 함께하셨으며사람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품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품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품기 어려울 때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사람의 부족함이 아니라 나를 품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5절에서 바울은 공동체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합니다.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서로 뜻이 같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로마 교회 안에는 이미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원하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보다 더 크신 그리스도를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며 신앙의 경험도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면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공동체는 모두가 똑같은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품을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7절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여기서 “받으라”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내 삶과 공동체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입니다.

우리가 완전해서 예수님께 받아들여진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며 허물이 있음에도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품는 힘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품으신 예수님의 은혜에서 나옵니다.

 

주일 말씀에서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습니다.

새들이 깃들기 위해서는 나무에 내어 줄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많은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 마음의 가지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품고, 연약한 사람을 기다려 주고, 

지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의 가지에는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사람에게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도 마음의 가지 하나를 내어 주어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서로를 품을 때, 

우리의 삶은 누군가가 찾아와 깃들 수 있는 나무로 자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