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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5(금), 내가 다 보지 못해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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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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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5(금), 내가 다 보지 못해도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1;8-13

 

히브리서 11장은 흔히 ‘믿음장’이라고 불립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길을 떠났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8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자신의 생애에 모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믿음은 모든 결과를 본 후에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때문에 먼저 걸어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시작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완성된 인생의 지도가 없었습니다.

어디에서 살게 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하나님의 약속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오직 한가지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신실하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미래를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세대의 모든 길을 미리 준비해 줄 수는 없어도, 

그들의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을 수는 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다 아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사라의 믿음도 소개합니다.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미쁘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시고 믿을 만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었던 것은 

단순히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습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음 세대의 미래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믿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이삭과 함께하셨던 하나님, 

야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다음 세대에도 신실하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13절에는 조금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들은 믿음으로 살았지만 모든 약속의 완성을 자신의 생애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믿으면 반드시 내가 결과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했으면 응답을 보아야 하고, 씨앗을 심었으면 

내가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믿음은 조금 다릅니다.

내가 열매를 다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을 

모두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한 세대를 믿음으로 살아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브라함이 떠난 뒤에도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13절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이 표현이 믿음의 중요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직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오늘 자녀를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내일 당장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음의 씨앗을 심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심고, 다음 세대가 이어 가며,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열매 맺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내가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멀리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생각하면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아브라함 한 사람의 생애보다 훨씬 컸습니다.

그래서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서 끝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이삭에서 야곱으로 이어져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요구된 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자기 생애 안에서 완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대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다음 세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믿음을 충실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 할 때 가르치며,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행 3:13)

이 이름 자체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약속의 완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의 시대에도 일하셨습니다.

이삭이 떠난 뒤에는 야곱의 시대에도 일하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애를 마치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한 세대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세대를 이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음 세대의 결과까지 책임지려는 조급함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맡겨진 믿음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가 결과를 너무 조급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십시오.

특별히 자녀와 다음 세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아 낙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가르친 말씀이 아무런 열매도 맺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아브라함도 자신에게 주어진 약속의 완성을 모두 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믿음은 내가 열매를 다 보아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것은 믿음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언제 어떻게 자랄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어쩌면 내가 보지 못한 자리에서, 내가 떠난 다음 세대에서 

하나님께서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