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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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6(토) 나의 믿음이 온 집의 믿음으로, 요한복음 4;46-53

  • 최고관리자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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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26(토) 나의 믿음이 온 집의 믿음으로, 요한복음 4;46-53

 

오늘 본문에는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한 왕의 신하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아들은 병들어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47절)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는 자녀를 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아들의 병이 고침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이 

결국 한 가정 전체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건으로 이어집니다.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믿음이 한 가정의 믿음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왕의 신하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높은 지위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죽어 가는 아들을 살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거나, 필요한 것을 공급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인생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녀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기도하고, 

내가 자녀의 미래를 붙들 수 없음을 인정하며 그들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 역시 부모가 줄 수 있는 귀한 사랑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자신의 집으로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함께 가지 않으시고 말씀만 하셨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

그에게는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눈앞에서 아들이 나은 것을 확인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집까지 함께 가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예수님의 말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이것이 믿음입니다.

확인한 뒤에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자녀와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눈앞의 결과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말씀을 붙들며 오늘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갑니다.

 

왕의 신하에게는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길을 걸으면서 그의 마음에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정말 아들이 살아 있을까?”

“내가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돌아가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돌아갔습니다.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가 언제 응답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 일하실 것을 믿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믿음은 모든 결과를 확인한 뒤에 걷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며 걷는 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종들이 그를 만나 말합니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51절)

아버지는 아들이 나은 시간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이 사람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들었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전할 수 있는 믿음도 이런 것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경험한 하나님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어려웠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도와주셨다.”

“우리 가정이 힘들었을 때 함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다.”

이런 믿음의 이야기가 쌓여 한 가정의 신앙의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53절)

처음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아버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끝날 때에는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간절함으로 시작된 사건이 한 가정의 믿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믿음이 가족에게 자동으로 전달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믿음은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응답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진실한 믿음이 한 가정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오늘 말씀은 보여 줍니다.

누군가 먼저 기도해야 하고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누군가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한 가정에 믿음의 문을 여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일 말씀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었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한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이 

온 집안의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이 두 말씀은 우리에게 같은 방향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믿음이 나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내 자녀의 하나님이 되고, 

그 믿음이 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의 믿음을 대신 결정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기도할 수 있고 말씀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씨앗을 심고 그 열매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동안 우리는 세대를 이어가시는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실 때부터 다음 세대를 바라보고 계셨음을 묵상했습니다.

화요일에는 신명기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우리의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수요일에는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 세대에게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해야 함을 묵상했습니다.

목요일에는 로이스에서 유니게로, 유니게에서 디모데로 이어진 

진실한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금요일에는 아브라함처럼 내가 모든 약속의 열매를 다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오늘의 믿음을 살아가야 함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 주의 마지막에는 왕의 신하와 그의 가정을 통해 

나의 믿음이 가정의 믿음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한 주의 모든 말씀은 결국 한 가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세대를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세대를 이어 일하십니다.

 

오늘은 우리 가정을 한 사람씩 떠올려 보십시오.

자녀를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고, 형제자매와 손자손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불러 보십시오.

아직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믿음 안에 있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녀가 있다면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붙들고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기도하고, 사랑하고, 말씀을 심고,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그다음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