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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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금), 사방으로 막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7-10

  • 최고관리자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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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02(금), 사방으로 막혀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 4;7-10

 

고린도후서 4장에서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삶이 

결코 강하고 화려하지 않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수많은 고난과 박해를 경험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7절)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표현합니다.

질그릇은 약하고 쉽게 깨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연약해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강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이 좋으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어려움을 만나도 언제나 담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깨지기 쉽고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그렇습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나면 두려워하며, 

때로는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데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네 가지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8절)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한다’는 것은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앞도 막히고 뒤도 막히고 양옆도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만큼 답답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사방이 막혀 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길까지 막힌 것은 아닙니다.

내 눈에 길이 보이지 않는 것과 하나님께 길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사람도 답답한 일을 만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 보일 수 있고,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에게 답답한 일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답답한 일을 당했지만 낙심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믿음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답이 보이지 않아도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9절)

바울도 넘어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다 쫓겨났고, 매를 맞았으며,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넘어지는 것과 끝나는 것은 다릅니다.

넘어질 수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계획했던 일이 무너질 수도 있고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가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그 많은 고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7절에 있습니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이것을 견딜 수 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질문이 조금 달라야 합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의 믿음은 내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가에 달려 있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단순히 견뎌 내는 것에서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0절)

바울의 삶에는 고난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연약하고 상처 입은 삶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질그릇에 금이 가면 그 안에 있는 것이 더 잘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잘될 때뿐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통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상처와 연약함도 하나님께 맡기면 복음을 보여 주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 주일 말씀인 사도행전 4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권력자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사방이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붙잡힌 바로 그 순간에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행 4:4)

사도들은 붙잡혔지만 복음은 붙잡히지 않았습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도 같습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않습니다.

넘어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환경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월요일에는 사람은 매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화요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수요일에는 막힌 길에서도 복음은 전진한다는 사실을 묵상했고, 

목요일에는 감옥에서도 기도와 찬송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렇다면 사방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답은 분명합니다.

내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매이지 않고, 복음은 전진하며, 찬송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도 붙들고 계십니다.

 

지금 내 삶에서 사방이 막혀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힘이 없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오늘 자신의 힘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우리는 질그릇처럼 연약하지만 우리 안에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연약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문제앞에서 흔들릴 수는 있습니다.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방이 막혀도 하나님의 길은 막히지 않습니다.

답답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너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