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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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0(토), 버림받은 돌에서 산 돌로, 베드로전서 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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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0(토), 버림받은 돌에서 산 돌로, 베드로전서 2;4-10

 

베드로전서는 낯선 땅에 흩어져 살아가며 

여러 어려움을 겪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했고 

때로는 소외와 고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런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예수님을 한 개의 돌에 비유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4절)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버림이 예수님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택하시고 가장 귀하게 여기셨으며,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 선택받은 돌, 

죽임당했지만 다시 살아나신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삶에는 ‘버림받음’이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예수님이 버려진 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중요한 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사람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는 다릅니다.

사람은 버렸지만 하나님은 택하셨습니다.

사람은 가치 없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은 보배롭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사람의 평가에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거나 소외될 때 

자신의 가치까지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가 하나님의 평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시는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단순히 ‘돌’이라고 하지 않고 “산 돌”이라고 부릅니다.

돌은 일반적으로 생명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살아 있는 돌’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셨지만 죽음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관하여 많이 알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께 나아가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날마다 살아 계신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부른 뒤 

우리에게도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5절)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역시 산 돌이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 욕심과 생각만을 위해 살아갔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살아 있는 돌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산 돌이 된 목적입니다.

돌 하나가 혼자 떨어져 있으면 집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연결하시고 다듬으셔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 가십니다.

신앙은 혼자 잘 믿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베드로는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절)

이번 주 화요일에 묵상했던 이사야 28장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흔들리지 않는 기초를 놓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산 돌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예수님께서 먼저 모퉁잇돌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내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누구 위에 서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흔들릴 수 있고 환경도 변할 수 있지만, 

모퉁잇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또 다른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7-8절)

같은 예수님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삶을 세워 주시는 모퉁잇돌이 되시지만,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입니다.

내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 앞에 나를 내려놓고 순종하면 

바로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예수님을 내 삶에 맞추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내 삶을 예수님께 맞추는 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는 이제 성도들이 누구인지를 선언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9절)

세상에서는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택하신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사람들의 평가에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업이나 재산, 성공이나 실패가 우리의 최종적인 정체성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평가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번 주일 우리는 사도행전 4장에서 사람들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 머릿돌로 삼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월요일에는 시편 118편을 통해 사람이 버린 돌을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화요일에는 이사야 28장에서 하나님께서 놓으신 흔들리지 않는 기초돌을 바라보았습니다.

수요일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반석 위에 인생을 세워야 함을 배웠습니다.

목요일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터가 없다는 말씀 앞에서 

그 기초 위에 무엇을 세우고 있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금요일에는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하여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성전으로 함께 세워져 간다는 사실을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베드로는 한 주의 말씀을 아름답게 마무리합니다.

모퉁잇돌이신 예수님께 나아갈 때 우리 역시 ‘산 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귀한 돌로 사용하십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다른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산 돌로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되어 마음 아파하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버림받은 그 돌을 머릿돌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평가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순간 버림받으신 예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닙니다.

버림받은 돌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산 돌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귀한 돌이 됩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벧전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