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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2(월),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은 잃지 않습니다, 욥기 1;20-22

  • 최고관리자
  • 20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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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2(월),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은 잃지 않습니다, 욥기 1;20-22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소유했고 일곱 아들과 세 딸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동방 사람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라고 평가받을 만큼 부유하고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욥의 인생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와 나귀를 빼앗겼습니다. 양과 종들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낙타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랑하는 열 명의 자녀가 한꺼번에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욥이 이러한 고난을 당할 만한 특별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욥기 1장에 나오는 하늘 회의 장면은 욥의 고난이 그의 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시험임을 보여 줍니다.

사탄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1:9)

다시 말하면 욥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욥기 1장의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사라져도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할 것인가?”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20절은 모든 것을 잃은 욥의 반응을 기록합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20절)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욥이 곧바로 기뻐하거나 감사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먼저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미는 행동은 

극심한 슬픔과 애통함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은 현실 앞에서 슬퍼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깊은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눈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욥의 행동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습니다.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그는 슬픔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슬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슬픔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나아가기보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과 멀어지는 이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로 가져갔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21절)

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본래부터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세상을 떠날 때에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욥은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재산과 자녀, 풍요로운 삶은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욥의 고백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는 말씀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때만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욥이 고난의 이유를 모두 이해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욥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때 감사하기 쉽습니다.

건강과 일터를 주시고, 자녀에게 좋은 일이 생기고, 

바라고 원하는 일 등 기도한 일이 이루어질 때 감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욥의 믿음은 우리에게 한 가지 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사라진다면,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욥의 고백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21절)

이 말씀은 욥기 1장에서 가장 놀라운 고백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재산을 돌려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자녀들을 다시 만났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의 현실은 여전히 절망적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욥의 예배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만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욥기 1장에서 사탄이 제기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사탄은 욥이 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복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건강이 흔들리면 믿음이 흔들리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향한 신뢰도 흔들립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 사라졌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22절은 욥의 반응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욥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욥은 분명히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욥기 뒷부분으로 가면 자신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해 탄식하고 질문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욥의 믿음을 단순히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 내는 태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욥의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질문했고, 때로는 탄식했지만, 

결국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믿음은 질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만납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왜 기도한 대로 되지 않는지, 

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욥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제 추수감사주일에 우리는 하박국 3장 17-19절을 통해 

「비록의 현실, 그럼에도의 감사」라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과 소가 없는 현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8)

 

하박국과 욥의 상황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하나님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욥은 실제로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보았습니다.

하박국의 고백이 “비록 없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기뻐하겠습니다”라면, 

욥의 고백은 “모든 것을 잃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믿음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자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누리는 건강과 가족, 일터와 물질은 모두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들이 우리의 믿음을 지탱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물은 사라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혹시 지금 소중한 것을 잃어버려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까?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욥의 모습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우리도 슬픔을 감추거나 억지로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습니다.

눈물이 있다면 눈물을 가지고, 

질문이 있다면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감사는 눈물이 없는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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