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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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목), 약할 때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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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5(목), 약할 때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12;7-10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참된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설명하는 편지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외적인 모습과 말솜씨, 고난과 연약함을 문제 삼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능력이나 업적보다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을 이야기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는 특별한 영적 경험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경험을 자신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의 가시’를 이야기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7절)
바울에게 주어진 가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체적인 질병이나 지속적인 박해였을 것이라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제거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충성스럽게 살아간다고 해서 모든 고난과 연약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복음을 위해 헌신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시가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고난이 교만을 막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고통을 무조건 참고 견디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며, 가정의 문제가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시를 제거해 주시는 대신 전혀 다른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9절)
여기서 ‘족하다’는 헬라어 ‘아르케이(ἀρκεῖ)로,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모든 어려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기에 충분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의 은혜를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질병이 낫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환경은 여전히 어렵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현실을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9절)
우리는 일반적으로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이 인간의 연약함 가운데서 온전하게 드러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강하다고 생각할 때에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건강할 때에는 체력을 믿고, 경제적으로 풍부할 때에는 재산을 의지하며,
그러나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면 비로소 내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깊이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얼마나 강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9절)
고통 자체가 좋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신의 약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장막을 치거나 거처를 마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기를 소망했습니다.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고, 약해도 강한 척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포기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깊이 의지하는 믿음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약함과 궁핍, 박해와 고난 가운데서도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이 즐겁기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갑자기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 겪는 아픔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기도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도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지난 추수감사주일에 묵상했던 하박국의 고백도 이와 연결됩니다.
그 연약함 속에서 주님의 능력을 경험했기 때문에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붙드시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해 실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의 약함을 없애 주시는 방식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약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약함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의 연약함을 감추기보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 12:9)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 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