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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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9(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다, 고린도후서 5;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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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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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19(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다, 고린도후서 5;14-17
오랫동안 형성된 성격과 습관, 가치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된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한 여종 앞에서도 두려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자신이 감옥에 갇히고 고난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을 박해했던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고난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고후 5:14)
바울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자신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 줍니다.
바울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복음을 전하는지 분명하게 밝힙니다.
여기서 '강권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붙들고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감동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랑이 삶을 결정하는 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붙잡혀 살아갑니다.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집니다.
사람들의 인정이 가장 중요하면 그들의 평가에 민감해집니다.
돈이 가장 중요하면 돈을 얻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자존심이 가장 중요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먼저 용서를 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고백합니다.
14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박해했던 예수님이 바로 자신을 위해 죽으신 구원자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을 알게 된 순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으면 삶을 움직이는 힘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했다면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받은 용서를 기억하며 화해를 생각합니다.
두려움입니까, 욕심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까?”
15절에서 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거나 가족을 위한 책임을 포기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새로운 목적과 자세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에도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합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이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만 바라지 않고 먼저 사랑하고 섬깁니다.
교회에서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은 특별한 종교적인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베드로와 요한을 생각해 봅시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행 4:20)
그들에게는 자신의 안전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중요했습니다.
자신의 편안함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볼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넘어 “지금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우리의 선택을 바꾸기 시작할 때 삶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육신을 따라 안다'는 것은 사람을 세상적인 기준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직업이나 학력, 경제적인 형편을 보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직분이나 봉사의 정도를 기준으로 사람의 믿음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고 의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의 부족함과 실수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변화된다는 것은 나의 행동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미워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무시했던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입장만 주장하던 사람이 상대방의 아픔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관계까지 새롭게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쌓거나 종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면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분께 속한 사람이 되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성격이 좋아지거나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실수하거나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면,
이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려고 합니다.
넘어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납니다. 실패할 수 있지만 그 실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다시 찾아오셨고, 성령께서 그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을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담대하게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박해했던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과거를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 주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과거의 실패에 붙잡혀 살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