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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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2(목),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삶으로 나타납니다, 미가 6;6-8

  • 최고관리자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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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과 유다에는 

종교적인 활동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절기를 지켰으며,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고, 

지도자들은 뇌물을 받았으며, 

부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를 행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마저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습니다(미 3:11).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도 일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가서 6장은 이러한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변론하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셨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십니다(3-5절).

그런데 백성은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미 6:6)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제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무엇을 드리는가뿐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를 물으셨습니다.

 

6절과 7절에서 백성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차례로 이야기합니다.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6절)

이어서 7절에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처음에는 일 년 된 송아지를 이야기하다가, 

이제는 수천 마리의 숫양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름을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맏아들까지 드려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규모를 극단적으로 확대하면서,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묻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자녀를 제물로 드리는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제사의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많은 것을 드리려고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비슷한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많은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면서도 가정에서는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기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헌신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직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배와 헌신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의한 삶을 덮어 주는 수단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는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예배당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8절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절)

첫 번째는 “정의를 행하며”입니다.

여기서 정의는 하나님께서 옳다고 여기시는 것을 실천하고,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며, 

약한 사람의 권리가 짓밟히지 않도록 하는 삶을 포함합니다.

 

미가 시대의 문제는 정의를 몰랐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불의를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알고 있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정의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정의를 실천해야 할 순간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하지 않는 것,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이 되는 잘못된 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자신의 이익보다 옳은 것을 선택하는 믿음입니다.

정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정의롭게 살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의에 관해 말하는 사람을 넘어, 

실제로 정의를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인자를 사랑하며”입니다.

여기서 '인자'는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는 중요한 단어로, 

사람 사이에서는 자비와 충성된 사랑을 실천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인자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비와 사랑을 마지못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기꺼이 행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실망을 안겨 준 사람,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족의 부족함을 이해하는 것, 

실수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 

어려운 이웃의 형편을 돌아보는 것,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미움에 머무르지 않고 용서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인자를 사랑한다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무조건 허용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계속 참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정의와 분별도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옳은 것을 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옳은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정의가 없는 사랑은 불의를 외면할 수 있고, 

사랑이 없는 정의는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의와 사랑이 함께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절)

세 번째는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의 두 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신앙의 중요한 자세를 보여 줍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판단과 능력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지나치게 확신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을 깨달으면 돌이키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압니다.

겸손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표현은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은 특별한 종교적 경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가정에서 갈등이 생길 때, 

자신의 이익과 정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열어 주시기만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에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일상에서도 그분과 함께 걷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은 신앙생활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우리의 삶과 분리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고백이 

우리의 일상에서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