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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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6(월), 서로의 짐을 지는 공동체, 갈라디아서 6;1–2
- 최고관리자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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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이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믿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강조합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에는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온유와 자비 역시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됩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2절에서 그 답을 제시합니다.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1)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 6:2)
바울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잘못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서로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
성령 충만은 단지 개인의 영적인 경험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품고 서로의 짐을 나누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1절)
바울은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잘못을 범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합니다.
주목할 것은 바울이 잘못한 사람을 공동체에서 밀어내라고 하지 않고
여기서 '바로잡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르티조'(καταρτίζω)입니다.
이 단어는 잘못되거나 손상된 것을 고치고 회복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 사람의 사정을 충분히 알기도 전에 비난하거나 거리를 두기도 합니다.
잘못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상대방을 정죄하는 데 있지 않고 회복시키는 데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말씀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진실을 말하고, 그가 회복될 수 있도록 인내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들을 만나실 때 그들의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정죄하는 데 머물지 않고 회개와 새로운 삶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바로잡으라고 권면하면서 한 가지 중요한 말씀을 덧붙입니다.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1절)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도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연약함을 보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도 넘어질 수 있는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내일은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대할 때 필요한 것은 우월감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나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넘어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겸손이 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함께 자라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여기서 '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바레'(βάρη)입니다.
문맥에서는 사람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가리킵니다.
앞선 1절과 연결하면 죄와 연약함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포함됩니다.
더 넓게는 고난과 슬픔, 삶의 여러 무거운 부담을 함께 나누는 원리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짐을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지 않고 '서로 지라'고 말씀합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모든 짐을 혼자 감당할 만큼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자신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고, 마음이 무너져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혼자 살아가도록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사도행전 4장 23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위협을 받고
풀려난 후 자신들이 속한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일을 숨기지 않고 동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받은 위협이 공동체 전체의 기도 제목이 된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가 함께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4장에서도 성도들이 기도한 후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그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기도했고, 함께 성령으로 충만해졌으며, 함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서로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문제를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함께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바울은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 단순히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는 길이라고 가르칩니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그리스도의 법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친히 보여 주신 사랑의 삶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고, 연약한 사람을 품으며,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서로의 짐을 나누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지, 예배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교회의 재정과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를 살펴봅니다.
그러나 바울의 말씀은 교회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운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실제로 나타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누군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그 형편을 돌아보며,
믿음이 약해진 사람이 있을 때 기다려 주고 붙들어 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서로의 짐을 나눌 수 있습니다.
큰 도움을 줄 형편이 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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