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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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7(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 시편 46;1–11

  • 최고관리자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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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납니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깊은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상황이 쉽게 달라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고 계신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신다면 왜 이 문제가 계속되는 것일까 질문하게 됩니다.

 

오늘 시편 46편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시편 46편은 고라 자손의 시로 소개됩니다. 본문에는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지며,  바다가 요동하고 나라들이 소란해지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극심한 위기와 혼란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시편 기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1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세 가지 표현으로 고백합니다.피난처, 힘, 그리고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피난처란 위험이 닥쳤을 때 몸을 숨기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성벽이 있는 도시나 견고한 요새로 피했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바로 그러한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피난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기도 합니다.우리는 어려움을 겪을 때 자신의 힘으로 버티려고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더 이상 감당할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 되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환난 중에'라는 표현입니다. 환난이 모두 지나간 후에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환난의 한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버틸 힘을 주시고,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주시며,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을 주십니다. 때로는 그것이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가장 깊은 도우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2절)

시편 기자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묘사합니다.땅이 변하고 산이 흔들리며 바다가 요동합니다. 땅과 산은 일반적으로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땅이 흔들리고 산이 바다에 빠진다는 것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왜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1절에서 고백한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와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모든 것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두려움에 지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이 좋은 사람도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병원에서 예상하지 못한 진단을 받으면 두렵습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 불안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러한 감정이 우리의 마지막 결론이 되지 않도록 붙들어 줍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안정되어야 마음도 평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상황이 안정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의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러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었고,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믿음의 공동체로 돌아와 기도할 때,  위협이 사라지게 해 달라는 요청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담대한 믿음은 문제가 작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이 크시다는 사실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5절)

시편 46편은 4절부터 새로운 장면을 보여 줍니다. 앞에서는 바다가 요동하고 산이 흔들리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성을 기쁘게 하는 강이 등장합니다.

이 강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져오는 생명과 평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5절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성벽이 높기 때문이 아닙니다.

군대가 강하기 때문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면 뭇 나라가 떠들고 왕국들이 흔들립니다. 세상의 권력과 질서가 요동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시자 땅이 녹는다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크게 소란스럽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세상보다 크신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7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7절) 여기서 '만군의 여호와'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기 백성과 함께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먼저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있는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은 우리의 모든 계획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10절)

우리는 이 말씀을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라는 의미로 자주 이해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잠잠하게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편 46편의 문맥을 보면 이 말씀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8절과 9절에서 하나님은 전쟁을 그치게 하시고 활을 꺾으며 창을 끊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과 무기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권세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그러한 문맥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여기서 '가만히 있어'라는 말씀은 단순히 아무 행동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멈추고, 하나님이 참된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어떻게든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더 불안해지고,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느낍니다.

물론 우리가 해야 할 책임과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하게 감당하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까지 붙잡고 불안해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

이 말씀은 우리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모든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계산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시편은 마지막으로 11절에서 다시 한번 선언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11절)

이 고백은 7절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시편 기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를 만납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지만, 어떤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의 삶에 남아 있기도 합니다. 기도했지만 병이 낫지 않을 수도 있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과 관계의 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 46편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환난이 모두 사라진 후에야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로 그 환난 속에서도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 되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흔들릴 수 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려움이 전혀 없는 인생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문제가 반드시 내 뜻대로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만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와 힘이 되신다는 믿음입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오늘도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편 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