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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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28(수), 부활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0–58

  • 최고관리자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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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들의 부활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는 죽은 사람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장차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생각이 복음의 핵심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4)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결국 이 세상의 삶에만 머물게 됩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우리가 붙들고 있는 영원한 소망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20절에서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예수님은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분 한 분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도 장차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소망을 가진 사람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기대에 머물지 않습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지막 미래까지 책임지신다는 믿음에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0절)

바울은 우리의 현재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라는 표현은 죄와 죽음의 영향을 받는 현재의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 상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서 늙고 약해집니다. 젊을 때는 건강했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질병을 경험하고, 피로를 느끼며, 결국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건강을 관리하고 의학이 발전해도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의 연약함을 설명하는 데서 말씀을 끝내지 않습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약속하셨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부활 신앙은 단순히 영혼이 육체를 떠나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몸을 새롭게 변화시키시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이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현재 상태가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연약하고, 삶이 고단하며, 많은 한계를 경험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실 마지막 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연약함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부활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1절)

바울은 성도들이 장차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잠잔다'는 표현은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가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 있는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52절에서는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성도들도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53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3절)

여기서 강조되는 표현은 '반드시'입니다.

부활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키셨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에게도 부활의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줍니다.

우리는 현재의 어려움이 너무 크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곤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앞으로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면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은 현재의 상황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하나님께서 이루실 미래가 남아 있습니다.

물론 부활의 소망이 오늘의 고통을 가볍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여전히 아프고, 질병과 고난은 실제로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러나 그 슬픔과 고통이 우리의 마지막 결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고난이 없다는 약속이 아니라, 

고난과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5절)

바울은 부활의 승리를 설명하면서 죽음을 향해 질문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죽음 앞에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건강과 재산, 명예와 권력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죽음을 향해 승리가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왜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7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승리의 근거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믿음이 강하거나 고난을 이겨냈기 때문에 승리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한 문제가 해결되면 승리했다고 말하고,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물론 문제의 해결과 삶의 회복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궁극적인 승리는 그것보다 더 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고, 

그 승리에 속한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지금의 형편만으로 승리와 실패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옳은 일을 했지만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궁극적인 승리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눈앞의 어려움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어려움이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58절)

바울은 부활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친 후 매우 실제적인 권면을 합니다.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그러므로'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열심히 신앙생활하라고 권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우리에게도 부활의 생명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활을 죽은 후에 경험하게 될 미래의 사건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의 소망이 오늘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함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영원한 미래가 있기 때문에 오늘의 삶도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특히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의 일은 단지 교회 안에서 맡은 봉사나 직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성도를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일까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도 때로 지칩니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위해 기도했지만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을 베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했지만 사람들은 그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무슨 의미가 있나?’를 생각합니다.

바울은 바로 그 질문에 대답합니다.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눈에 보이는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열심히 섬긴다고 해서 언제나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행한 믿음의 수고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당장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수고를 헛되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수고가 죽음으로 끝나는 세상에만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를 섬기는 수고도, 가족을 위해 드리는 기도도, 

어려운 이웃을 향한 사랑도 하나님 앞에서는 소중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 냈느냐가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맡기신 삶을 얼마나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