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내가 빌라도요 바라바이다_ 마27;11-26

  • 다니엘
  • 2016-03-24
  • 882 회
  • 1 건
공의보다 다수를 따른 무책임한 결정
그러나
빌라도는 나였다.
바라바도 나였다.


하나. 내가 빌라도였다.
상황적으로는 아마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 주고 싶었던것 같다.
아무리 보아도 주님은 죄가 없으셨다.
그러나 백성들 다수가 바라바를 요청했다.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 한 사람 직권으로
풀어주는 것은 식은죽먹기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죄 없음을 알았지만 자신의 지위와 욕망 때문에
양심에 눈 먼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함 있어도 죄 없는 사람 내치면 안된다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했기에 그 이름 인류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사도신경 고백마다 예수를 팔아 넘긴자되었다.

한 동안 빌라도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형편없는 자라고 생각했다.

다시 빌라도를 생각본다.

그는 신앙인이 아니다. 정치인이다.
요즈음 한국 정치계에 여,야가 야단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정권획득이 목적인 사람들로 모인 자리는 그런가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빌라도의 행동은 그럴수도 있겠다 싶다.
로마 통치아래서 자신의 후원자였던 ‘세자누스’가 숙청당했다.
자신도 잘못하면 큰일 날 상황, 몸 사려야 했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이 다스리고 있는 유대에 민란이 일어나기 직전이다.
곧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 있다.
정치꾼은 그것 포기 못하는 법이다.

빌라도를 그렇게라도 이해하고 싶다.

그게 나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빌라도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는 신앙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신앙인이라면 달라진다.
그게 빌라도와 내가 달라야 하는 지점이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가이사가 왕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요 주인이다!
그 고백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어도 기꺼이 택했다.
삶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들이었다.

신앙인은 내 유익과는 다른 선택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단순히 신분이 변화된 것으로 족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받은 자이다.
칭의! 신분이 바뀌어진 사람이다.
그러나 주님의 요청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라
제2의 구원,
성화되어가는 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게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의미이다.
신분이 바뀐자로 끝내는 삶이 아니라
신분에 걸맞는 사람으로 살라시는 것이다.

신앙에는 수준에 맞는 의무가 있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수준에 맞는 삶이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신분이 바뀐 사람이 아니다.
바뀌어진 신분과 그에 걸맞는 수준에 맞추어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신분변화를 즐기지만
스스로 수준 높은 성화의 삶을 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주님을 모르는 빌라도나 별 다르지 않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는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정치인이지만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둘. 바라바는 나다
예수님 대신에 풀려난 바라바는
강도요, 민란일으킨 자, 살인자이다.
죽었어야 하는 자가 예수님 때문에 살았다.
예수님이 죽어서 자신이 산 자가 되었다.
나, 역시
죄인이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예수님 때문에 산 자 되었다.
오늘의 바라바는 나다.

명절에 관례대로 살아난 바라바.
다시 산 나, 그러니 믿음의 시작이 내 인생의 명절인셈이다.
바라바는 그렇다 치고,
나는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 산 사람이다.
구원과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사람이다.
신분에 맞는 삶을 살기위해
얼마나 묵상하고, 노력하며 변화된 삶을 추구하는가?
오늘 말씀이 내게 주는 은혜요 도전이다.
 
내가 빌라도요
내가 바라바이다.
    • 야긴과보아스 16-03-25
      늘 성경의 주인공은 나요, 악한자는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묵상글을 읽으면서 내가 빌라도이고 바라바일 수 있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꽤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빌라도와 내가 달라야 하는 지점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예수님때문에 영원을 살게 된 내 자신이야 말로 바라바이되
      그 바라바와는 달라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구나.
      많이 생각하고, 고난주간에 예수님 은혜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