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_느5;1-13

  • 다니엘
  • 2016-06-08
  • 760 회
  • 3 건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재 제목외에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 본문에 제목으로 마음에 다가왔다.


지도층은 힘 있는 사람들이다.

돈, 권력, 인맥 등

어떤 종류의 힘을 손에 쥐고 있다.

그 힘을 약자, 가난자,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사용되고 쓰여져야 하나님나라 됨이 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해서 쓰여질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약자의 고통이 크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

산발랏, 도비야, 게셈등과 같이

외부에서 도발하는 위협보다 더 위기인것은

내부에서 일어나는 문제이다.

외적인 위기앞에서 공동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위기극복을 위해 뭉치게 된다.

문제는 사탄은 외부문제를 극복하는것 보이면

내부를 공격하고 들어간다.


유다 백성들의 위기는 두가지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는 흉년(3절) 때문에 생겼다.

근원은 이것이다.

두 번째는 흉년의 때에 지도층들이

자신만을 생각해서 나타난 문제였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들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성전을 건축하려하기 때문에 생긴문제라고 여기기 쉽다는 것이다.

거룩한 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성전건축을 하면서 내부적으로 쌓였던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니 거룩한 일을 진행하다가 어떤 위기가 생기면

그 정확한 원인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크게 노하였으나 깊이 생각하고’(6절)

느헤미야는 흉년에 백성들이 당한 고난의 문제가

기득권, 지도층, 부자들의 횡포때문임을 알고 분노했다.

그러나 분노할 상황은 분명하나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분노는 또 다른 분노를 낳게 된다.

분노는 근본문제로 우리의 시선을 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감정, 사람과 사람을 대결구도를 갖게 한다.

느헤미야가 깊이 생각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지혜를 구했을 것이다.

들은 소식들이 맞는지 현장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서의 지지기반이 약하다.

지역기득권층을 적대시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인기를 유지하게 해 달라거나

내가 다치지 않아야 한다고 고민하지 않았다.

무엇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을일일까를 먼저 고민했다.

그것이 거룩함이다.


C.S 루이스는

‘하늘의 것을 목적하라

그러면 하늘과 땅의 것을 동시에 얻게 될 것이다‘ 했다

사안이 급할수록 기도하고 묵상후 진행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지도층을 설득했다.

종종 아무런 대안도 없이 비판만 하는 이들이 있다.

비판이든, 비전이든 분명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동체의 특징은

갈등, 실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느헤미야가 기도하고 말씀으로 대안을 제시하자

모든 기득권층들이 하나같이 순종했다.

멋있어도 너무 멋있다.

말씀이 주어지면 바로 순종하는 공동체.

이 모습이 낯설지 않아야 한다.

느헤미야 공동체의 모습이 낯선것은

우리안에서 이러한 모습이 없기때문은 아닐까 싶다.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으니라’(13절)


모든 회의의 결론은 ‘아멘’으로 끝나야 한다.

모두가 승자이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 영광받으시고 찬양받으신다.


내부 문제로 공사가 조금 늦추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그게 더 낫다.

내부상처를 치료하고 든든히 해나가는 것이

그게 더 빠르다.


분노하게 될 때 감정적인 처리가 아니라

하늘 하나님께 더 기도하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말씀으로 대안삼은 느헤미야.

거기에 주저없이 순종한 지도층이 감동을 준다.

오늘 지도자, 리더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은 깨달음 주심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가 이 땅의 소망임을 깨닫고

우리 새생명교회가 그런 공동체 될 수 있도로

내 자신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리디아 16-06-09
      아무래도 저의 오늘 묵상은 은혜롭게 시작하지는 못 했습니다.  어느 교회 공동체 내에서나 있을 수 있는 '세상 사람보다 못한' 사람들의 행태가 회개하고 돌와 왔다고 해서 너무 미화되어 아름답게 은혜롭게 해석 되어져야 하는 것이냐 하는게 제 시선이었지요.  실수 할 수 있죠.. 그리고 회개해야 돼겠지요.  그러나 회개했다고 해서 그 실수가 정당화 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제 시선은 역시 아직 삐둘어져 있는 상태인지..... -.-;;

      그러나 두번 읽고 세번 읽는 중 느헤미야의 공의롭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자세와 기득권.재물을 가진 자들이 (공동체 내 리더급 사람들)이 리더 답지 못하게 행동한 것들을 깨닫고 자기들의 잘못을 회개하고 약속을 실행하기로 한 것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입안에 쓴맛 가득입니다.

      그러나 또한 깨우침도 있습니다.  믿음의 자녀로 살면서 늘 깨어 있어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정말 각고의 노력을 하고 살아야겠다는 깨달음...!!!  실수를 하고 회개를 하고를 반복하는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실수를 저지른 후 회개하는 모습은 어리석어 보이며 아름답게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다짐을 합니다.
    • Coramdeo 16-06-09
      느헤미야가  기도하고 말씀으로 대안을 제시했을때 순종했던 기득권들의 모습이 참 은헤로 다가옵니다
      떄로 우리는 문제가운데 있을때  말씀에서 답을 찾기 보다는 우리의 신앙생활연륜과 경험 관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떄가 있는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과 공동체와 관계가운데 일어나는 모든문제의 해답은 전부다 성경말씀에 있는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나의 자존심다 내려놓고 나의 고집 내려놓고 나의 편견내려놓고 순종하는 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 디모데준 16-06-09
      오늘 말씀을 통하여
      또 한번 느헤미야의 멋있는 점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다니엘님 묵상처럼
      크게 분노한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 기도했던 모습이 너무 멋있게 와 닿았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상한 감정을 사람에게 풀어서 더 큰 상처를 남기는게 아닌,
      하나님께 먼저 나아가 토로 할수 있는 저가 되길 소원합니다.

      두번째는 느헤미야가 살았던 거룩한 삶 입니다.
      느헤미야가 말씀으로 기득권들의 잘못들을 책망했을때
      기득권들이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듣고만 있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하나님앞에서, 또 사람들 앞에서 흠 없는 삶을 살았기에
      책망을 가만히 듣고 회개 했던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훈계할때, 훈계하는 사람의 삶이 깨끗하지 못하면
      너나 잘하세요 또는 너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라고 하기 십상인데
      느헤미야 앞에선 아무말도 못하고 겸허히 받아들인걸 보면서
      남을 책망하기전, 먼저 내 삶을 돌아보자 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세번째는 느헤미야 대안만 내놓은게 아닌
      먼저 스스로 그 대안을 실행에 옮긴 사람이였다는 겁니다.
      10절 말씀처럼 "나와 내 형제와종자들도 역시 돈과 양식을 백성에게 꾸어 주었거니와 우리가 그 이자 받기를 그치자"
      말만 멋있게 하고 그치는게 아닌, 먼저 행동으로 본을 보여줬던 느헤미야처럼 되는 저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