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사명이 분명하면 두려움도 죄도 이깁니다 느헤미야 6:1-14
- 리디아
- 2016-06-10
- 726 회
- 2 건
1절부터 9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산발랏등의 원수들의 끊질긴 협박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악의 협박과 흔듦을 믿음으로써
뿌리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특히 9절 후반부에는 오직기도로 하나님께 힘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But, I prayed, "Now strengthen my hands")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음의 방해 세력들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해 올때 우리가 보여야 하는 자세일것입니다.
나는 과연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굳건한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나?
그러기 위해서 나는 더욱 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지키기
위하여 기도 자리에 나가고 말씀만을 의지하고 살아야하겠지.
연약한 나이니까... 어느 한순간도 그 끈을 놓지지 말아겠지.
주님 도와주세요!
10절에서 14절까지에서는;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들은 느헤미야는 어리석게
거짓 예언에 흔들려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죄에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앞서 말한대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음으로 이를 지혜롭게 판단하여 뿌리치고
죄를 짓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방이 적이고 거짓 예언까지도 내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이런때에 나라면 과연 성전 외소에 몸을 숨기고
싶은 마음을 떨치고 차분하게 기도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옳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삶은 안전하면 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가며 그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지나간 목사님 설교중의 말씀을 오늘 QT 본문 중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안전한 삶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는
위험한 상태일 수가 있다는 사실! 두려운 마음으로 난 너무 안일하고
안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를 돌아 봅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그 말씀 안에서 주님께 곁붙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만을 구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런 하루 하루가 점으로 이어져 당신 사람으로 흠없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이런 깨달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산발랏등의 원수들의 끊질긴 협박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믿음의 사람으로서의 악의 협박과 흔듦을 믿음으로써
뿌리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특히 9절 후반부에는 오직기도로 하나님께 힘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But, I prayed, "Now strengthen my hands")
믿지 않는 자들이나 믿음의 방해 세력들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해 올때 우리가 보여야 하는 자세일것입니다.
나는 과연 저렇게 흔들리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는 자세로
어려움을 헤쳐나갈 굳건한 뿌리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나?
그러기 위해서 나는 더욱 더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지키기
위하여 기도 자리에 나가고 말씀만을 의지하고 살아야하겠지.
연약한 나이니까... 어느 한순간도 그 끈을 놓지지 말아겠지.
주님 도와주세요!
10절에서 14절까지에서는;
스마야의 거짓 예언을 들은 느헤미야는 어리석게
거짓 예언에 흔들려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 죄에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었지만.....
앞서 말한대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뿌리 깊음으로 이를 지혜롭게 판단하여 뿌리치고
죄를 짓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사방이 적이고 거짓 예언까지도 내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이런때에 나라면 과연 성전 외소에 몸을 숨기고
싶은 마음을 떨치고 차분하게 기도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옳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삶은 안전하면 돼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져가며 그 안에서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지나간 목사님 설교중의 말씀을 오늘 QT 본문 중 느헤미야의 모습을
보며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안전한 삶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는
위험한 상태일 수가 있다는 사실! 두려운 마음으로 난 너무 안일하고
안전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를 돌아 봅니다.
주님,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그 말씀 안에서 주님께 곁붙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만을 구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그런 하루 하루가 점으로 이어져 당신 사람으로 흠없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이런 깨달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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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사 16-06-11
- 안전한 삶은 우리에게 죄를 짓게 하는 위험한 상태일 수 있다는 묵상이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제 삶이 위험한 삶이 되지 않도록 더욱 살피도록 깨달음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받은 묵상의 은혜를 처음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1절, 아직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산발랏과 도비야와 게셈 이 세사람은,
느헤이야가 처음에 예루살렘에 온다 할 때,
성벽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을때,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했을때 역시 방해를 했습니다.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했을때라는 것은
성벽을 다 쌓고 마지막 마무리를 할때라는 뜻이니
사탄은, 방해자는 마지막 마무리할때까지도
교묘히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성벽을 다 쌓아도 문짝을 달지 못하면 이제까지의 수고가 다
헛것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성벽과 문짝을 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문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모든 것 다 이루었다 할때에
사람의 마음문도 잘 단속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될 수 있겠구나를 생각했습니다.
뿐만아니라 일의 시작에서 마무리 과정을 말하고 있으니까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로 연결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의 시작과 과정도 중요하지만
하루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고 단속하는 것의 중요함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 다 잘되게 해 놓고서도
정리하고 마음 다스리고 마무리 하지 못하면
해 놓고도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생각했습니다.
또한 문짝을 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대적들의 공격을 보면서
사탄 역시 질서정연하게 모든 것이 정리되는 것보다는
흐트러져 있고 허물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실체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앙과 믿음의 길을 생각해보니까
여러 가지들이 묵상이 되었습니다.
사탄은,
예수 믿는 것보다 무너져 있는 인생 그 자체를 좋아하겠구나.
예수 믿는 것까지는 좋으나 변화되지 않는 인생을 바라겠구나.
삶의 질서보다 혼돈스럽고 무질서한 삶을 살게 원하겠구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내 생각대로 사는 것으로 유혹하겠구나.
믿음, 헌신보다 적당히 사는 것을 더 부추기겠구나...
그런의미에서
성벽을 내 자신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예수 믿음, 변화된 삶, 질서, 말씀대로 사는 삶
믿음, 헌신, 희생 등을 감당하고 나를 내어 드리는 삶이
마음이 문을 단속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야긴과보아스 16-06-11
- 저는 오늘 본문중에서 10절의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본문은 '이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로 되어 있습니다.
스마야는 성경에 잘 알려진 바 없는 인물로 좀 낯선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느헤미야가 찾아갔다는 점으로 보아
당시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예언(거짓예언)하기를
느헤미야 당신의 목숨이 위태하니
외소(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들어가
생명을 보전하는게 좋겠다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본문 정황을 보면
느헤미야는 이 말이 거짓예언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아마도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곳을 굳이 어기시면서까지
생명을 보전하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은 비상식적이고 죄악을 이용해서
인간의 위기를 모면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위기에서 지혜롭게 상황을 분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위기에서 스스로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사명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목숨을 구하려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면 이런 분별력은 가능한 것이구나.
기도하는 사람,
사명이 분명한 사람은 참과 거짓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저에게도 이런 분별력이 있기를 기도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서 주신 은혜가 매일 매일 큽니다.
누명, 억울함, 속상함, 가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적이 노리는 점이라는 것,
진리에 서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리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
악한 모의, 속임수, 거짓말, 유혹, 루머...
수 많은 지뢰지대를 통과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 진리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갖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