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복음이 흐르도록 (딤후 1:9-18)

  • 순대리우스
  •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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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주기도문의 내용 중 일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기 전부터 우리를 향하신 계획과 뜻이 있으셨고, 그 뜻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다. 우리는 단지 이 땅에서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그 뜻에 따라 사는 것뿐이다. 디모데후서 19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 또한 창세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인데 사탄에게 빼앗겼다가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다시 회복된 결과물이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바로 복음이다. 그 복음을 위해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 중심에 바울이 있었다. 이제 그 복음사역의 바통이 믿음의 후배들에게 넘어가는 순간이다.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흐르는 물은 살아있고 생명을 준다

이 강물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흐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에스겔 47:9)”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내 안에 머물러있는 복음은 부패하게 된다. 그래서 복음은 흘러야 한다. 이웃으로..열방으로.. 오늘도 이 복음이 흐르도록 선포자와 사도와 선생으로 세움 받기를 원한다. 복음이 흐르는 곳마다 번성하리라!

    • 다니엘 17-01-13
      담대하고 신실하게 소명을 이어 가는 사람
      디모데후서1장 9-18절 말씀

      묵상1.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목적은
      거룩하신 소명때문이시다.
      하나님의 뜻과 오직 은혜이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얻음의 기쁨과 감격을 잘 간직하는 반면에
      구원얻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대체로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걸맞는 수고와 땀, 눈물과 고난도 뒤따른다.

      바울은 그 소명을 복음을 위한
      선포자, 사도, 교사로 세우심을 입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고난도 많이 받게 될 것이지만
      고난 때문에 부끄러워? 이유가 없다고 한다.
      고난은 소명 때문에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나라가 완성될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소명의 자리는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바울은 복음을 위한 선포자, 사도, 교사로 세움받았다.
      아마도 바울을 통해서 온 땅에 복음이 흘러가기를 원하셨기때문일 것이다.
      바울이 가지고 있는 그만의 특성을 가지고 세우셨을 것이다.

      소명이 깨달아지면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은 사명의 자리,
      선교의 자리가 된다.
      힘들고 고된 직장이 소명의 자리가 되고
      배움의 시간이 힘들어도 학교가 선교지가 될 수 있다.

      소명은 나를 부르신 이가 누구인지
      부르심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한 사람이
      나의 모든 삶과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묵상2.

      부르심과 소명이 무엇인지 아는것과 모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같은 바울과 동역하는 자들속에서도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있고
      오네시보로가 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분명하면
      고난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뭔가 누리고 받는것에만 치우치면
      언제라도, 누구라도 부겔로와 허모게네가 될 수 있다.
      그들도 한때는 바울의 동역자들이었음이 틀림없지만
      바울과 하나님을 떠났다.

      오네시보로는 그와는 달랐다.
      바울을 누구보다도 격려해주고
      바울이 복음 때문에 감옥에 있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복음이 무엇인지 알면 그럴수도 없다.
      신실한 동역자는
      기쁨만이 아니라 고난도 나누고 필요도 채워주는 사람이다.

      나는 누구의 동역자인가?
      나는 그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오늘은 어떻게 섬길 것인가?

      내게는 어떤 동역자가 있는가?
      나는 그들을 동역자로 생각하는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힘들로 어려울 때 나는 누구인가?

      바울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동역한 사람은 많지 않다.
      노골적으로 배반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울은 탁월한 신학자이고 방대한 성경을 기록했다.
      헬라를 뒤집은 바울에게도 배반자는 있었다.
      예수님에게는 가룟유다가 있었다.
      리더를 신뢰하고 끝까지 동역하는 일은 분명 어렵다.

      나는 확신한다.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간다고 믿는다.

      엘리야에게는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명을 남겨 주셨다.
      그런 사람이 시대마다
      교회마다 있다.
      그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신다

      동역할 사람을 분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경건의 능력이 아닐까 싶다.
      경건의 모양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모방할 수 없다.
      하루아침에 될 수 없다.
      이것이 매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말씀앞에서 준비하고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말씀앞에서 겸비한 사람만이
      참되게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다.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 나는 오네시보로가 되기를 원하고
      누군가는 나에게 오네시보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관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바울과 오네시보로.
      오네시보로와 바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