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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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받는 축복 (눅 1:1-17)
- 순대리우스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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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을 통하여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한다. 단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이고 의인처럼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의인의 삶을 산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등장한다. 노아, 아브라함, 욥, 다니엘...그리고 여기 사가랴와 엘리사벳. 누가복음 1장 6절에 그 둘은 하나님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치심을 받았고, 왜 의로운 사람인지 설명하고 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 잡을데 없이 잘 지켰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에게 자식이 없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결국 의로움으로 그 약점이 축복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의로운 삶에 대한 보응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고 은혜이지만 내 삶의 축복은 내 행위에서 비롯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의인의 삶을 사는지 오늘의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믿음으로 내 삶의 축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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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17-01-20
- 묵상1.
이방인 누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에 대해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보았다고 했다.
목격자, 말씀의 일꾼된 자들이 기록한 글을 정리하여
한 사람 데오빌로를 위해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다.
그 이유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사랑과 관심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온 인류를 위한 복음서,
아니 나를 위한 복음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 한 일이다.
누가는 한 사람의 믿음을 위해서
이렇게 긴 편지를 정성과 사랑으로 써 보냈다.
그러기 위해 누가는 복음을 자신부터 확실하게 하는 일을 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도 바르게 서기를 원했다.
나 역시 복음과 말씀을 더 정확히,
바르고 온전하게 알아가는 일에 힘을 써야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복음이 예수 믿기로 작정한
이 시대의 데오빌로와 같은 이들에게
확실히 서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복음의 편지가 내 마음속에 잘 준비되어 있기를 소망한다.
묵상2.
누가복음을 읽고 반복해서 수없이 읽은 끝에 얻은 확실함이 있다.
사가랴는 결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면서
자녀를 달라고 기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 많은 제사장들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변질되고
현실에만 안주하여 있을때에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는 경건한 사람이 사가랴였다.
그의 기도는 메시야가 오셔서 이 땅을 평화의 땅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기도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시기 위해서는 말라기에서 예언된
세례요한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물론 사가랴는 자신에게서 세례요한이 태어나기를 기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메시야를 위한 기도가 그의 기도의 핵심이었다.
그런 사가랴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대에 메시야를 소망하는 그런 참된 기도를 하는 이라면
이 가정을 통해서 세례요한을 보내도 되겠다.
그러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다.
너를 통해서 세례요한을 보내야 되겠다 하신 것이다.
그래야 말라기와 복음서가 연결된다.
오늘 내 삶속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메시야가 통치하는 것 되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말씀이다.
그런 인생을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쓰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오늘 나로 하여금 이 시대의 사가랴가 되어 주지 않겠니?
물으시는 것 같다.
한 사람을 위한 열정이
모두를 위한 복음이 되게 하신 하나님,
참된 기도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알리시고
역사하신 하나님,
그래서 묵상 에세이의 글이 가슴에 깊게 남는다.
그런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우리가 낙심하는 이유는
문제가 너무 커서도,
우리 힘이 너무 나약하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내 아빠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 김상권
이 묵상이 사뭇 가슴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