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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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VS 회개 (눅 3:10-20)

  • 순대리우스
  •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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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VS 회개 

본문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그들에게 이른 말씀이다 (3:10-14). 이 말씀은 7절부터 이어지는 내용으로서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주고 있고, 또 그 잘못에 대한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요한은 단순히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무리들로 하여금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나는 회개에 대한 내용을 묵상할 때마다 항상 같이 생각나는 단어가 있었다. “후회이다. “회개후회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었을 때, “회개에 대한 더 깊은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리한 내용을 함께 공유함으로서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도둑이 도둑질을 계획한다고 해보자. 어느 한 부잣집을 발견하고 집 안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고민한다. ‘문의 열쇠를 따고 현관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방범창을 뜯고 창문으로 들어갈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현관문을 선택했다. 그리고 잠겨있는 열쇠를 조심스럽게 풀었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뿔싸!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울리더니 잠시 후에 경찰이 들이닥친다. 쎄콤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체포되었고, 경찰서로 호송되었다. 그는 호송되면서 생각하기를, ‘에이, 괜히 현관문으로 들어갔네! 방범창을 뜯고 창문으로 들어갈 걸…….’ 이것이 후회이다. 자기의 잘못을 뉘우친다. 그러나 그 뉘우치는 목적이 경찰에게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도둑질을 성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회개는 뉘우침의 목적이 다르다. ‘에이, 현관문이든, 창문이든 아예 도둑질을 하지 말걸…….’ 이것이 회개이다. 자기의 잘못을 돌이킴으로서 그에 따른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 ‘도둑질에 대한 잘못을 돌이킴으로서 정직한 삶이라는 열매를 맺는 것이 회개이다. 

두벌 옷이 있고 먹을 것이 풍부했던 부자들, 세리들, 군인들, 이 외에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습관처럼 해 왔던 일들에 대한 잘못들을 요한에게 지적을 받았을 때, 그들은 후회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회개의 마음이었을까? 

오늘도 내가 지은 죄들에 대하여 반성하고 뉘우치지만, 그 잘못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후회인지, 아니면 회개인지, “회개라면 그에 따른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본다.

    • 야긴과보아스 17-01-31
      세례요한은 회개의 참 의미를 선포한다.
      큐티 제목처럼 변화없는 회개는 쭉정이와 같다.
      내 삶속에서도 늘 반복되는 실수와 부족함, 연약함을 본다.
      그런데 어제의 실수를 오늘에 되풀이하고 몇 달 전의 부족함을 오늘 역시 드러낸다.
      굳이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라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그러니 참된 회개의 삶은 멀었은가 싶다.
      그래도 말씀이 주는 권고에 다시 바르게 서고자 한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다.
      백성과 지도자를 향해 회개와 책망을 말했다.
      백성은 그에게 집중했으나 헤롯과 같은 지도자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요한은 큰 기적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단지 회개와 책망이 전부였다.
      메시지가 분명하니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렇다고 우쭐대거나 월권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위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확히 알았다.

      바른 삶이란 요한의 삶이 아닐까 생각이든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어디까지 인지 그것을 바르게 아는 것만으로도 건강한 사명자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간 힘 있다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란 바른 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힘을 이용해서 바른소리를 잠재우려 한다.
      헤롯은 바른 소리를 없애는 방법으로 요한을 옥게 가두었다.

      요한은 오래 살려면 왕의 스캔들을 터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타협하지 않았다.
      사역의 연장을 위해 진로를 수정하지 않았다.
      사역 달성을 위해 침묵하지도 않았다.
      할 것은 마땅히 했다.
      주님도 그러셨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왔지만, 주님보다 먼저 이 세상을 떠났다.
      비록 짧은 인생이었지만 사명을 다 한 인생이었다.

      ​내게도 주신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어떻게 이루게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세례 요한을 본받으면 그 사명을 이룰 것이라 믿는다.
      성경과 양심대로 사는 것.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
      결과나 미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오늘 주어진 그 일에 전념하는 것이다.
      판단은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