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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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행하는자가 참제자 - 눅6;39-49

  • 다니엘
  • 2017-02-10
  • 743 회
  • 2 건

내 눈 속의 들보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

티는 먼지조각들보는 지붕을 떠 받치기 위해 사용하는 대들보이다아무래도 조각보다는 들보가 더 크고 눈에 잘 띄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사람, 참 제자는 어떠한 사람인가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 말씀은 나로 하여금 여러가지 질문을 하게 한다. 나는 무엇을 먼저 보는가내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는가아니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먼저 보는가나는 무엇을 더 힘들어 하는가내 눈의 들보를 더 힘들어 하는가아니면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더 힘들어 하는가?

나는 내 눈의 들보를 볼 수 있는 겸손함이 갖추어져 있는가아니면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침소봉대하여 들보처럼 여기는 교만하고 어리석은 자인가? 

먼저 나를 바로 보면실상 사랑하는 형제에게 할 말이 많지 않다먼저 나를 잘 보면형제가 고맙고 사랑스러울 수 있다내 눈에 들보가 있으면실상은 형제의 티를 잘 볼 수 없다형제의 눈의 티는 들보를 가진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그 동안 나는 어떠했을까

내가 바로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아니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면서그 들보를 가진 눈에 비춰지는 형제의 작은 티를 빼내라고 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을까아니 그런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조심스러워진다그런데 앞으로는 더 자주더 많이 가르치는 자로 서야 하는데… 나의 말이 아니라 나의 성품으로 주님을 드러낸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내 입술에서 나가는 말의 영향력보다는 내가 삶으로 드러내는 제자의 삶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들보를 감출 수는 없다들보는 어떻게든지 빼내야 한다그리고 형제의 티는 내 삶을 통해 눈 녹듯이 녹아 내리도록 하면 최고일듯하다그 사랑, 그 격려와 따듯함이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마음에서 눈에서 티끌은 눈물로 흘러 내릴 것이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만큼 주님을 닮아야 하는데… 실상은 너무 힘들다주님의 백성에게아니 믿지 않는 나의 형제들에게 내 삶을 통해 주님을 드러내야 할텐데쉽지 않다그래도 감당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야긴과보아스 17-02-10
      43~49절은 참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듣고 행하는 자이다.
      이를 위해 나무와 열매비유,
      반석과 모래위에 집은 지은 자의 비유로 말씀한다.

      결론은
      좋은 나무, 선한 사람,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듣고 행하는 자’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좋은 나무로써,
      좋은 열매를 맺는 자이고,
      행하지 않는 자는 나쁜 나무로서
      나쁜 열매를 맺는다.

      당연하게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안에 선이 가득 쌓인 선한 자로서 필연적으로 선을 내고,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악한 자로서 그 안에서 악을 내게 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믿음의 주초를 단단히 하여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되어
      어떠한 풍랑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짓는 것과 같아
      아주 적은 풍랑에도 흔적도 없이 무너져 사라져 버린다.

      결국 오늘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다.

      오늘의 말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에 대한 얘기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에 대해서는
      오늘 말씀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임을 보여준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모두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님은 말씀으로 경고하고 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여 삶으로 적용하여,
      그 말씀이 삶에서 능력으로 이어지도록 겸손히 행하는 자를,
      오늘 본문에서는 좋은 나무요,
      좋은 열매를 맺는 자로,
      선한 사람이요,
      선을 내는 자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요,
      어떠한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로 칭찬하셨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
      삶에서 그 말씀의 순종을 찾아 볼 수 없는 자에 대해서
      주님은 나쁜 나무로,
      나쁜 열매를 맺는 자로,
      악한 자요,
      악을 내는 자로,
      어리석은 자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로,
      따라서 미세한 풍랑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자로 경고하신다.

      그러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가?
      이런 자는 교회 안에 있는가?
      교회 밖에 있는가?

      이전에 교회에 다녔던 사람,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
      여전히 자기 부인을 거부하고 자기 의로 믿음을 보이려는 사람,
      교회를 사회적 지위나 품위 유지를 위한
      또 하나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사람,
      예수를 부르지만 예수의 종이 아니라
      예수를 종으로 부리려는 사람 등등………

      이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 악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주님은 규정하고 경고하고 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신다.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그러나 진정한 축복은
      그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
      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믿는 사람은 변화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미 변화된 사람이라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말씀은 살아 있어 늘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씀대로 사는 자에게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 성숙을 가져 온다.
      그래서 날이 더해갈 수록, 말씀에 순종하면 할수록,
      더 좋은 나무가 되어 더 좋은 열매를 맺게 하고,
      더 선한 사람이 되어 더 선한 것을 풍성하게 내게 하며,
      그 집의 반석은 날마다 더 견고해져서
      그 집은 어떠한 풍랑에도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빛난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말씀을 삶에서 그대로 적용하여 행하는 사람이
      주님의 참된 제자라 말씀하고 있다.

      너는 참 제자인가?
      내게 물으신다.
      사람은 안에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드러나는 것으로 이웃에게 열매로 나타난다.
      열매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다.
      너는 네 안에 말씀이 있니?
      그러면 드러나고 있니?
      그렇게 물으신다.

      하루에 한 가지씩 말씀묵상 중에 주신 것으로
      살아내려고 애쓰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
    • 예배자 17-02-11
      아멘!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성숙한 열매 맺음의 삶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오늘 묵상에세이를 읽고 마음에 감동이 있어 옮겨봅니다.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였다는것은 심령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겼다는 뜻이다...
      우리 안에 말씀 유전자가 심겨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사람 '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 '처럼'이 결국 '진짜'가 된다...
      모든 감사함과 온유함과 순복함으로, 당신 안에 심긴 말씀을 받아들이라.
      말씀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당신을 조금도 부족함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빚어낼 때까지.
      이는 당신 속에서 당신을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다."

      말씀을 알지만, 주님이 뜻과는 반대로 행하는 우리는 사춘기인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황기를 끝내고 주님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안에 성령님의 도우심과 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속에 있는, 그분의 자녀됨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자로써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행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키워나가는 우리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