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밥 먹자! 내가 살께!

  • 느헤미야강
  • 2017-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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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8장 토요새벽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열왕기 3장 솔로몬의 지혜가 오버랩되면서

특히 16절 이하에서 참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루 동안 수많은 말을 합니다.

문제는 내가 하는 말이

지혜로운 말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말하기보다

먼저 말한 후 지혜로운지 아닌지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말한 후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늦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라고 잘못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시인해도 만회가 되는 것이 있고

만회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리석은 말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듣는 지혜가 없습니다.

듣는 지혜가 없으니 어리석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말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지혜롭게 듣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듣는 지혜가 있는 사람들은 분명 지혜로운 말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했을 때,

솔로몬이 구한 것도 백성들을 잘 재판할 수 있도록

먼저 듣는 마음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가 듣는 지혜를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솔로몬의 유명한 재판인 두 창녀의 재판입니다.

한 아들을 두고 두 여인 모두 자기 아들이라 주장합니다.

결국 솔로몬은 너무도 지혜로운 판결을 내립니다.

그가 지혜로운 판결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듣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받은 은혜와 도전은 단순히

솔로몬이 지혜로운 판결을 했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지혜의 은혜를 입은 후

벌어지는 두 창녀와 아이에 관한

재판에 담겨진 숨은 뜻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는 후

제일 먼저 소개되는 내용의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 여인들은 창녀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대우받지 못하고

가장 비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의 한 부류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의 내용이 어떠하든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애환이나 억울함을

누군가가 들어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한 나라의 왕이

바닥같은 삶을 사는 이들의 아픔을 들어주기란 더욱 그렇습니다.

 

지혜?

괜찮은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내게 유익이 됨직한 사건들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같은 인생을 사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열왕기 3장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음이 큰 도전이 됩니다.

 

세상을 살면서 얼마나 억울한 일들이 많고

풀고는 싶으나 여력이 없는 이들이 얼마나 많는지...

주신 지혜는 그렇게 사용하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은

잘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이들의

아픔까지 들어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솔로몬은 듣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잠언 18장에서 두 가지를 언급했습니다.

13절에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고 했고,

17절에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한 의견에 대해서 내 편 만들려고,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로 둔갑시키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정보를 누군가에게 흘립니다.

그리고 전해 들은 이들은 대부분

한 사람이 말한 것을 그대로 믿어 버립니다.

먼저 누군가가 건네 준 정보를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굳이 세상을 언급한다면 특히 언론이 그 주범입니다.

오늘날 언론들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보다

일단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이라고 판단되면 내보냅니다.

사람들은 언론의 기사만 보고 찰떡같이 믿어 버립니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나 사건을 비판하는 내용이 보도될 때,

수많은 댓글들이 쏟아집니다.

그 댓글들 중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 기사가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믿어 버립니다.

일단 믿고 비판하고 비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듣는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듣는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

무슨 지혜로운 말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어리석고 미련한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수많은 말들이 난무합니다.

일단 소문이 나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의미에서

듣는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듣는 지혜는

말하는 지혜보다 더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잘 들어야만이 잘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잘 듣되 한 쪽말이 아니라

이해 당자의 말도 또한 들어야 합니다.

복되고 지혜로운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복되고 지혜롭게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진 듯 하지만

정말로 제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저 사람 내 편 만들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하며

사람가리며 만나는 이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거든

솔로몬처럼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도 관심가져 주는 이 없는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관심가져 주지 않는 사람들!

이 번 주일에는 우리 공동체안에서

아직 한 번도 말을 섞어 본적이 없는 이들,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들에게도 귀 기울여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과 함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준 후에

아무 말 않고 따듯한 웃음과 말로

밥 먹자!’

내가 살께!’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한 주간 이런 저런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잠언 말씀을 묵상하다가 주신 은혜를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