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시지프스 신화와 새생명교회

  • 느헤미야강
  • 2017-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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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중에는 시지프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들에게 벌을 받아 무한지옥에서부터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산꼭대기에는

그 바위를 멈추거나 세워둘 공간이 없고

결국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그 바위를 다시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하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형벌을 받은 자입니다.

 

이 형벌을 끝내려면 둘 중 한 가지가 필요 합니다.

 

하나는 시지프스의 삶이 끝나면 됩니다.

하지만 신화는 결코 시지프스를 죽게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바위가 더 이상 굴러 떨이지지 않도록

산꼭대기에 바위를 얹어 놓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밀기를 멈추는 순간 바위는

다시 굴러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가 시지프스 보다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자리를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은 시지프스가 받을 것입니다.

마침내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려

우뚝 세워 놓은 시지프스에게

모든 칭송과 찬사가 쏟아 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시지프스보다 앞서

산에 올라 맨 손으로 산봉우리를 깎아 내고

바위를 세워 둘 자리를 만든 자들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앙적이지 않은 신화이야기인데

결코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저마다 수많은 헌신과 눈물,

기도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부흥이라는 꼭대기를 향해

조금씩 조금씩 간신히 밀어올릴때마다

굴러 떨어지고

다시 오르고 또 굴러떨어지는 이 땅의 교회의 모습이

꼭 시지프스 신화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산꼭대기에는

부흥이라는 바위를 세워둘 공간이 없어

결국 바위는 굴러 떨어지고 마는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방법은 없을까요?

전혀 방법이 없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누군가가 시지프스 보다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자리를 만들어 주면 되듯이

믿음이 공동체 안에서도

누군가가 먼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자리를 만들어 주면 될 것입니다.

역시 화려한 조명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눈물과 희생, 보이지 않는 헌신으로

산봉우리를 깎아 내고

바위를 세워 둘 자리를 만든 자들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이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공동체안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내적이든 외면의 모습이든

건강한 부흥이라는 산꼭대기를 위해

더 넓은 마음, 깊고 그윽한 눈빛과

바다같은 포옹력과 마음으로 무엇이든

품어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강력한 색채를 가졌으면

넉넉한 마음의 바다로 희석시키고,

가끔 크고 작은 돌을 던지면

깊은 관용의 바다로 다 품어내어

돌을 던진 흔적조차도 남지 않을 믿음의 크기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바다와 돌이 하나된 그런 것...

 

시지프스의 고통을 끊어낼 수 있는

그 단 한가지의 길.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먼저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택한 예수님

그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이가

오늘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산꼭대기를 깍아내고

바위를 세워 둘 때가

조금씩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조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