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나에게 왕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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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헤미야강
- 2017-07-09
- 612 회
- 1 건
나에게 ‘왕’은 누구인가?
이것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호 3:5)
내가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면
그 자각의 물꼬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회복으로 돌려야 합니다.
‘경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여러모양으로 어렵게 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니
눈치 보는 곳 없이 막 살게 된 것이지요.
주일예배 설교중에 소개한 바처럼
폴 트립의 《경외》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이렇습니다.
‘뒤틀린 삶을 바로잡는 힘.’
저는 이 책의 부제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
일 중독,
폭식과 비만 간음 등 작고 사소한 문제에서
도덕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삶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겪고 있는 혼란과 혼미,
끔찍한 도덕적 타락의 근원적인 출발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
바로 여기서부터 이런 뒤틀림이 시작됐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보는 이들이 없을 때 하는 그 행동이 경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외의 회복이
뒤틀린 삶을 바로 잡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끔찍한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극성을 부렸던 사사 시대를
성경은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 21:25)
이 표현은 잘못된 표현 아닐까요?
왕이 없긴 왜 없습니까?
엄연히 왕 되신 하나님은 살아 계셨습니다.
그때, 그 사사 시대 때도
하나님이 돌아가셨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께서 왕으로 계셨습니다.
하지만 경외가 사라지니
왕이 없는 것처럼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 시대를 타락으로 이끈 것입니다.
내 삶에는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께서 왕으로 살아 계시는가?
삶 속에서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 마음 안에 영적인 자각이 일어나고 회개가 있었다면,
이를 악물고 잃어버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경외가 무엇일까요?
아무도 보는 이들이 없을 때 하는 그 행동이 경외입니다.
사람이 있을 때는 우아하기 짝이 없는데,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면 엉망진창이라면
그것은 경외가 아닙니다.
목사인 제 자신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
강단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볼 때만
거룩한 목사로 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골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곳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목사로 서는 것,
이것이 목사인 제게도 날마다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손 들고 찬양할 때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배 마치고 나갈 때에,
가정에서,
골방에서
진정한 경외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주변 사람들,
가족들,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경외가 회복되는 복된 인생이 되되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
경외함이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만을 내 삶의 왕으로 선포할때에만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하나님 경외함으로 준비될때에야만
비로소 바른 예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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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적인 외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하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다시 한번 자신을 점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