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

  • 느헤미야강
  • 201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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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목) 말씀큐티와 묵상

하나님의 타이밍이 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고나서야
당신이 죽으시고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다.
준비되지 않으면
감당할 마음 안되면 말씀하시지 않았다.

감당안됨.
준비안됨.
변함없음.
그 앞에서 혹시라도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는게
얼마나 헛된 것인지...

우리앞에도 그런 일은 있다.
주님의 타이밍에 믿음으로 바르게 반응할 준비가 필요하다.

예수님도 이제는 되겠다 싶어
고난과 부활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을터이다.
그렇다고 다 이해하고 성숙함으로 살아 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다 알고서도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하나씩 준비를 시켜 나가신듯 하다.
‘얘들아, 이제는 시간이 없어!’
그 정도면 지금은 아니어도 완전히 깨달을 날이 올 것이고.
지금의 마음이면 그때쯤이면 감당하게 될 거야.
그런 마음이셨을 것 같다.

17절,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때에
열 두 제자들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 12명만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말씀하셨다.

그런때에 하신 말씀은 예의주시해야만 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 두어야 했다.
늘 마음에 무장하고 있어야 했다.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부모가 어떤 중대한 일을 진행하거나 예감되어질때
제일 큰 아이를 불러 조용히 각오를 시킨다.
나 역시 이곳 캐나다에 올때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큰 아이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고
넌지지 반응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새로운 환경과 도전앞에서
마음으로마나 각오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도 그러셨을 것 같다.

그때에!(20절)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예수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두 아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 달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자리가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고난의 자리임을 알았다면 그럴수는 없었을텐데...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언제나, 누구나 그렇겠구나.
내 삶속에서는 또 얼마나 헤아림없이
튀어나오는 말로 주님을 아프게 했을까?
제 욕심에,
높아지고 싶은 마음에...

오늘 우연히 보았던 뜻밖의 영상이 주는 도전이 있었다.
우리 삶속에 임하는 여러 가지 갈등이나 위기가
실은 사탄의 교묘한 전략이라는 내용이었다.
묵상이 짧으면
그냥 보고 지나치면
내게 아무런 도움이 안될 수 있구나.
내 삶에 어떤 적용이 되지 않을 수 있구나.
더 깊었으면
이런 저런 돌부리들을 쉽게 뛰어 넘을 수 있었을텐데...

‘너희가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실 수 있느냐?’
‘예!’
‘그래, 마시는 사람이 있을 거다.’
‘제자들아, 너희가 그 잔 마실거다’ 그렇게 말씀하신게 아니었다.
‘예비된 어떤 사람들은 마실 수 있다’ 했다.

그런데 묵상중에 전해져오는 묵직한 어떤것이 있다.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로 시작해서
요한을 제외한 제자들 대부분 그 고난의 잔을 마셨다.
순교의 잔을 마셨다.
같은 길을 걸어갔다.
자연사했을뿐이지 요한도 실은 긴 시간의 섬김의 잔을 마셨다.
제자들은 그때는 몰랐다.
제자들이 그 예비하신 자들이었다.

내 믿음의 자리에서 아멘으로 순종하고
어디든,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말하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안된채
영문도 모른채
하는 대답일 수 있겠다.
그래도 어느순간에는
그 ‘예’라는 대답을 내 삶을 통해 이루어드리는 때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모르고 대답했지만 결국은 그 길 갔던 제자들처럼...

오늘 내 믿음은 어디까지일까?
십자가를 지기 직전의 믿음일까?
십자가 위에까지 나아가는 믿음일까?

24절,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자기들도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오십보백보.
나도!
너도!
우리도!
똑같다.
드러낸 것과 드러내지 않음.
들킨것과 들키지 않은것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