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노후자금을 달라하면?

  • 느헤미야강
  • 2016-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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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7(토) 마21;1-11 말씀묵상


그동안 여러번 입성하셨다.

12살 때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와 같이.

공생애 초기에 들어가실때는 성전을 뒤집어 엎으셨다.

베데스다,

초막절때에도,

최소한 4~6번 정도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는가?

십자가에 죽임당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주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이 최종목적을 위한 리허설이다.

산상보훈, 비유말씀, 수많은 병자를 고치심,

세리를 부르시고 식사하심도,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며 여인을 만난 것도...

지금까지 행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은 결국은

주님의 십자가하고 연결이 되어진다.


지금까지 행하신 모든 일과 말씀이

십자가와 연결하지 못하면, 하지 않으면

그 행하신 일, 말씀하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사랑하라 하신 것에 대해 입술의 가르침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신 것,

치유하신 사건들이 단순히 의학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구원이라는 것,

간능하다 잡힌 여인, 사마리아 여인을 용서하신 것은

단지 특정한 누군가만을 위함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친히 보이신 사건이다.


예루살렘 입성!

예루살렘에 누가 입성하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졌다.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예루살렘이 그들의 성지가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에 들어가셨고

그곳에서 행하신 일 때문이다.


오늘 내 삶의 마음에

누가 들어있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이왕 무엇인가가 들어아야 한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이 말씀은 스가랴9;9절의 성취이다.

마태가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으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마태복음을 기록해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때 그 나귀를 타신 사건이 스가랴에 예언된 말씀을

이루시는 사건이었음을 깨달았을때

얼마나 전율했으며 놀랐을까?


그러나,

구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이렇게 해야겠다가 아니다.

주님은 주님대로 말씀하고 행할 뿐인데 그것이 구약의 성취가 된 것이다.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나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쓰시기 위해서 준비 해 놓은 것이다.


반대로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나귀이고,

귀중한 재산이다.

내가 애지 중지하고 있는 것,

귀중한 어떤 것.

나중에 팔아서 학비,

집사는데, 논과 밭 사는데,

노후자금에 사용하려던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쓰시겠다고 한다.


나귀의 진짜 주인은

자기가 아닌 주님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위대한 청지기이다.


주님은 주님이 사용하시고자

나를 통해서 준비하게 하신 것이 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할 때가 가장 가치있는 시기이고,

가장 귀중한 것이다.


주님께 쓰이면 가장 귀중한 것, 가장 가치있는 것인데

내게만 쓰임으로 끝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마리아의 향유옥합!

주님께 부어드리니 온 집안에 향유냄새 가득.

광야에서 사용한 여인들의 놋 거울,

제단에 드리니 거울없이 사는 여자가 되었다.

그래도 가장 어여쁜 여인들이었으리라.


주님은 오늘도 나를 쓰시겠다하시고,

나의 것을 쓰시겠다고 하신다.

마리아처럼 주의 계집종이오니 라고 고백하거나

요나와 같이 도망가거나,

주님께서 쓰시겠다 할때 내가 쓰겠다고 우기는 자 되지 말아야지.


주님께서 쓰시겠다 할때에

부족하다.

초짜다.

한 번도 태웠다.

내가 먼저 타야 한다.

그러지 말아야 할텐데...


내가 은혜 받은 이유가

부하게 된 이유가

건강하게 된 이유가

지혜롭게 된 이유가

출세하게 된 이유가

예수님의 마지막을 위해 예비된 것들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