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알고도 그 길 가는것이!

  • 느헤미야강
  •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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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늘~!

어떠한 성품이 있으시길래 그럴 수 있으셨나!


순종, 용기, 충성, 배려, 경청.

한 주간 나누었던 5가지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 자녀됨?

그리스도인됨이란?

구원으로 끝남이 아니라 구원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다.

다 안다.


출애굽없이 가나안이 없지만

출애굽보다 더 중요한게 광야40년이다.

광야 40년은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한 준비였다.

광야없이 가나안은 없다.

그것도 안다.


‘안다고?’

‘네가 안다는 말이지?’

‘그러면 이것이 네 안에 있니?’


한 주간 성품에 관한 말씀 나누면서

주님에 내게 물으셨던 질문이다.


그리스도인 됨이란?

구원얻음 동시에 구원을 이룸이다.

그리스도를 닮아감의 다른 표현이다.


어떻게 닮아갈까?

믿음의 길은 막연함, 추상적인것이 아니다.

오래 예수 믿어 성경을 많이 알고

교회의 되어지는 일에 정확하며,

경험과 이론으로 무장함이 아니다.

믿음 좋음이란 증거는 아니다.

여전한 성경적 증거는 변화되었는가이다.

주님의 성품이 내게 있는가이다.

주님의 성품이 내 안에서 드러나는가이다.


내 안에 순종이 있는가?

생각이 다르고, 이해는 안되고

납득안되어도 말씀하시면 순종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이 말을 걸어왔다.

나도 처음엔 이해 안되었다.

그가 위대해보임은 갈바를 모르고 순종의 자리로 간것이다.

모리아산에도 순종하여 나갔더니

왜 그러셨는지 이해되었다.

이해하고 순종하면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나아가면 이해된다.


내 안에 용기가 있는가?

기도로 험한 자리에 나갈 용기가 있는가?

기도의 동역자가 있는가?

나는 누군가의 기도의 동역자인가?

알면서도 사지로, 희생과 눈물의 자리로 나갈 줄 아는가?

위험한 줄 알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가?


바울은 그랬다.

환상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말씀하셨다.

꿈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너 잡히고 옥에 갇히며 고난당할꺼야?

기도중에, 환상중에 그런 것 보면

응당 안 가야 된다.

안가는게 맞다.

얼마나 능력이 많았으면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셨을까?

우리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 기도와 환상을 본 사람은

대단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스스로 센 척 한다.


바울이 위대한 것은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사인으로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가면 고난이 있을거야.

그러니 마음 준비하렴.

그렇게 읽었던게다.


참 달라도 많이 다르다.


용기란 그런거다.

알고도 나아가는 거다.

에스더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다.

바울을 생각할때마다 부끄럽고 심히 존경스럽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해서 더 그렇다.


내 안에 충성이 있는가?

달란트 비유가 참 고맙고 격려가 된다.

5,2,1달란트를 각각 은사대로 받은 사람들.

5,2달란트 받은 사람들은 두 배씩 남겼다.

말씀이 감동되고 위로되는 것은

두 배씩 남겼다고 칭찬하심이 아니라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동일한 칭찬을 하셨다.

그게 어떻게 적은 일이지!

주님의 셈은 세상과 달랐다.


나 또한 다른 동기나 동력자 선후배를 볼때마다

참 나는 재능도 은사도 없다.

아쉬워하고 속상해한적도 참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그건 정당한 비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가진것과 내가 없는 것

내가 가진것과 다른이에게 없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바른태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과 다른이가 가진것.

그것으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것은 어떤것과 상관없이 주님께는 적은 일이라는 것.

그러니 큰 것 맡았다고, 적은 것 맡았다고

서운해 할 일이 결코 아니었다.


내 안에 배려는 있는가?

나의 본성을 넘어서 다른 사람을 향한 생각과 태도는 바른가?

밭에 이삭을 남겨두어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의 조상이 된 보아스.

복된 비결은 거기에 있었다.


내 안에 경청(듣는 마음)이 있는가?

솔로몬이 구하였던 듣는 마음,

오해를 이해로 만들어주고

사랑과 존경, 자존감을 세워주되

치유의 능력까지 가지고 있는 경청.

성도를 향한 경청이 아니라

언제나 정답을 전해주어야 잘난 목사라는 어이없음부터

최고의 경청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까지.

나는 주님을 닮은 사람인가?


그리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옮겨놓은 글 하나.


김치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배추가 다섯 번 죽어야 한다고 한다.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배가 갈라지면서 또 한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다시 죽고,

매운 고춧가루와 짠 젓갈에 범벅이 돼서 또 죽고,

마지막으로 장독에 담겨 땅에 묻혀 다시 한 번 죽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낸다는 것이다.

깊은 맛을 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성질을 죽이고,

고집을 죽이고,

편견을 죽여야 한다.

변화는 죽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깊은 하나님이 말씀을 전하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죽는 연습을 하라 하신다.

연습이 아니라 죽으라 하신다.

죽는게 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