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싹이 준 감동과 묵상!

  • 느헤미야강
  • 2016-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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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심은 화분에 새싹이 돋았습니다.

아주 작디 작은 방울토마토 씨눈에서

물을 주고 햇빛을 쬐어 주었더니

십여일만에 싹이 돋았습니다.

십며칠의 기다림도 왜 싹이 나오지 않냐며

안절부절한 제마음을 보며

우리 주님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겠구나 느껴졌습니다.”


일대일제자양육과정 모임에서

한 자매의 큐티 나눔과정속에서 나눈 내용이자 간증입니다.


저희집에도 지난주 한글학교에서 심은

토마토화분이 아이들 수 만큼 두 개가 있습니다.

하루, 이틀이야 기대도 안했지만

4, 5일이 지나고나서도 싹이 나지 않자 자못 걱정이 됩니다.

어느 순간 자고일어나면

엄마 아빠를 향한 인사보다 화분을 먼저 확인합니다.


감 감 무 소 식 !


‘물을 너무 적게 주어서 그렇다고’

‘아니야 너무 많이 주어서 그래’.

‘아니면 너무 햇빛이 강한곳에 두어서 그런가?’

별의 별 상상을 하며 여러가지 걱정도 합니다.

‘혹 씨앗이 죽은거 아니야?’

일주일이 지난 뒤에도 아무런 조짐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죽거나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습니다.

은근히 기대했던 어른도 실망이지만

아이들은 그 아쉬움이 훨씬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그레이스님의 큐티를 읽다가

10여일만에 싹이 났다는 글을 보고

아침 일어나자마자 화분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아, 글쎄 어느새 1cm 정도로 싹이 자라있었습니다.

밤새 자란 것이지 싶습니다.

그 기쁨이 얼마나 크던지...

생명이 있으니 결국에는 자라는 구나.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해

여러날동안 물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것이구나.

싹을 내기 위해 참 오랜 시간 수고했겠구나.

씨앗도 창조질서에 순응하느라 애썼을터,

그렇게 생각하니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쁨과 슬픔이 짝이라 할 수 있나요?

채원이 것에는 싹이 났는데

산이 것에는 여전히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산이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왜 자기 것은 안나오냐고...


똑같이 심었는데

하나는 싹이 났고

다른 하나는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씨앗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나머지 하나에도 싹은 날 거라는 거.

어쩌면 늦은만큼 더 기쁨이 있을 거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일상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똑같이 심었고

똑같이 물을 주었으며

똑같이 기다렸음에도

싹을 틔우는 시간은 똑같지 않다는 것에서 입니다.

한 자매의 고백처럼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그러시겠구나!


얼마나 많이 예배를 드렸으며,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찬양을 했는지,

얼마나 많은 성경공부를 했으며,

얼마나 오랜 시간의 믿음생활이 있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고백과 열심을 다했는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런거 그만하면 되었으니

‘네 믿음의 싹을 틔울 시간이 되지 않았니?’

‘네가 살아 있는게 맞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겠니?’

라고 물으시는 것만 같습니다.

나, 너 기다리다 지쳤다 하실까 두렵습니다.


‘네 안에 나 있다.’

‘나는 생명이다.’

‘생명이 네 안에 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자라게 되어 있는거야.

마치 ‘이제쯤이면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니?’ 라며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한탄하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작은 화분에 토마토를 키우는 과정에서

배우게 하십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믿음이 싹을 틔워 드려야겠습니다.

사랑의 싹을

배려의 싹을

나눔의 싹을

열정의 싹을

용서의 싹을

감사의 싹을 틔워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밤을 자고나면 내일은 주일입니다.

산이의 화분에 토마토 싹이 황토색 흙을 비집고

올라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의 화분에도

주님을 닮은 은혜의 싹도 같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새생명공동체의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도

예쁜 사랑의 싹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