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아저씨, 세상은 꼭 그런것만은 아니에요.

  • 느헤미야강
  • 2016-05-22
  • 1,057 회
  • 0 건
1.
 
그날 뜻 하지 않았던 때에
소낙비가 내렸습니다.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길가던 행인들이
하나 둘 씩 햇빛과 비 가리개가 되어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섭니다.
잠깐 내리고 멈출 것 같던 비가 계속내리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정류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맨 처음엔 비를 피해
정류장에 들어온 한 청년.
사람들이 몰려들자 점점 바깥쪽으로
청년이 밀려났습니다.
뒤 늦게 정류장에 몸을 밀치고 들어온
덩치큰 막무가내 아저찌때문인지
청년은 급기야 정류장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젊은이 세상이란 다 그런걸세’
 
누군가가 웃으며 그 말을 던집니다.
그래서인가요?
머쓱해졌기도 했겠다 싶었습니다.
그 자리에 계속 있기가 좀 그랬었을까요?
그 말을 들은 청년이 갑자기
빗속을 뚫고 뛰어 갑니다.
 
한 10분쯤 되었나요.
온 몸에 비를 흠뻑 맞은채
예의 그 청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청년의 두 손에는 비닐우산이
한 가득 들려 있었습니다.
이어서 하나씩 그곳에 비 때문에
모여 있는 분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아저씨, 세상은 꼭 그런것만은 아니에요.’
 
그리곤 빗 속을 뛰어 갔습니다.
결코 반항때문이 취한 행동은 아니었음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런 청년이 있다는게 신기했습니다.
 
그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시기에
아들을 저렇게 키웠을까?
교회는 다닐까?
여자친구는 있을까?
뭐하는 사람일까?
학생?
아니면 직장인일까?
 
짧은 시간동안 이런 저런 생각들이 가슴에 파고 들었습니다.
 
그 청년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토요일 주일설교를 마무리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는 순간,
그 청년이 생각났습니다.
그 청년이 보고싶습니다.
그리움도 사랑이지 싶습니다.
 
 
 
2.
 
벌써 4년전의 일입니다.
 
갑작스런 많은 비!
전도폭발훈련 기도후원자 초청시간!
이어 마련된 점심식사 도중에
천둥번개며 갑작스런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없이 학교에 간 산이가 생각난 아내.
누군가의 급한 전화를 받고 나간 아내의 전화에
우산을 들고 급하게 사무실을 나섰습니다.
 
‘어!!!!!
아, 이럴때는 어떻해야 하죠?’
 
명색이 목사인데...
교회 식당앞에 많은 분들이 비 때문에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여러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못 본채하고 그냥 갈까?’
‘바쁜 일 있는척하고 뛰어 갈까?’
 
그 짧은 시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게
웃기고 부끄럽기까지 한 목사!
그때 전도폭발훈련 시간내내
그 자리가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것같다며
식사하시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하신
노 권사님이 눈에 띄였습니다.
 
“권사님, 제가 집까지 바래다 드릴께요.”
“빗속에 저랑 데이트하세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댁에까지 가시는 동안
연신 앞으로 이런데에는 안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세 많으신 분이 당신밖에 없다며...
 
“아니에요, 권사님 때문에 너무 귀한 시간이 되었어요.”
“권사님같이 기도해주시는 분들때문에 전폭훈련이 잘 되고 있는거에요.”
 
적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와 감사를 전했습니다.
 
권사님댁!.
그게 뭐 감사할 일이라고,
제 속마음을 알아차렸으면 그러고도 목사냐 하셨을터인데,
안들킨게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제 손에 이미 들려 있는 우산을 보시고도
집에 여유있게 챙겨 놓았던 우산을
몇 개 챙겨주시겠다고 잠깐 기다리라 하십니다.
 
‘아, 안되는데...
산이 기다리는데...
비 맞으면 안되는데...
그냥 갈까 말까...
 
아주 짧은 시간에 수천번도 더 했을 웃기지도 않은 고민.
그리고 건네주신 작고 예쁜 우산 3개.
필요할 때 사용하시라고 넉넉히 챙겨주십니다.
이제 산이에게 가면 됩니다.
 
조금 늦어버린 하교길,
학교에 도착하니
기가막힌 타이밍!
다른 반 아이들은 거의 다 귀가한 시간,
그날따라 산이 반의 선생님께서
조금 늦게서야 아이들을 보낸 까닭입니다.
 
‘아빠~,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응~ 아빠는 산이를 사랑하니까 다 알지!’
 
산이에게 우산 하나를 건넸습니다.
비오는 날 기분좋게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길을 걸었습니다.
가는길에 작은 우산 하나로
엄마와 딸아이랑 함께 쓰고 가시는 성도님,
손에 들린 우산 하나를 건넵니다.
 
산이를 집에 보내고 난 후,
거저받았으니 혹 필요할 사람이 있겠다 싶어
남은 우산을 교회로 가지고 왔습니다.
식당에 들러 필요한 분 있으려니 권해보지만
‘남편이 데리러 온다...
비 그치면 천천히 가련다...’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름 다 대비책이 있으셨습니다.
 
전혀 그런 마음 눈꼽만큼도 없으셨지만
우산을 건넨 손과 마음이 머슥해질 찰나,
교역자 사무실에 들어가니
그 우산 꼭 필요한 사람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렇게 받은 은혜 건네고 나니
길거리에서 우산을 건네받은 성도님,
교회로 찾아와서 우산을 돌려주십니다.
딸 아이를 데리고 오셔서 감사를 같이 표현합니다.
잊어도 될 작은 일에 굳이 딸아이와 함께
감사를 표현한 엄마의 마음은,
어쩌면 아이에게 참 감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고 싶은 것인지도 모를터...
 
우산 하나로 잠깐이지만 부끄러운 마음을 전해드렸을뿐인데
노 권사님의 귀한 배려가여러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젊은 목사는 노 권사님과 빗속의 연인이 되어보고,
아들과는 빗속의 쌈박한 산책을,
성도님에게는 모녀만의 다정한 데이트.
그리고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진 우산 하나.
 
갑자기 일상의 따듯한 추억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