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애써도 안 되는 것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

  • 느헤미야강
  • 2016-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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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고 있는데

잘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낯선 나라에 가서

전혀 익숙하지 않는 타국어를 들을 때의 상황입니다.

그러다가도

우연히 길거리에서나 식당, 커피숍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말은 작게 말해도 잘 들립니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옵니다.

가까이 있지 않아도 들립니다.


어떤 언어는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나,

어떤 말은 안 들으려 해도 들려옵니다.

가까이 있어도 들리지 않는 말이 있고,

멀리 있어도 들리는 말이 있습니다.


모국어와 외국어의 차이점이지요.

애써도 안 되는 것과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습니다.


내 삶에 익숙함,

자연스러운 언어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들리는구나.

들으려 하지 않아도 들려지는구나.

배워야 하고 알아가야 하는 언어들은

내 몸에 익숙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작게는 오늘 하루의 계획, 만나는 사람, 거래처에서

진로, 결혼배우자 문제,

그리고 다양한 삶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심을 받아들이는 것.

내 인생을 맡기고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내 몸에 익숙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가까이에서 말씀하셔도 들리지 않습니다.

아니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듣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내가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듣고 싶어 하는 것도 한 몫을 합니다.


먼저

내가 그 안에 그의 말이 내 안에 가득하고

내 인생의 가지가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접붙여진 대로

그 분의 진액을 내 안에 날마다 드러내려는 애씀이 없고서

그 분의 음성을 듣겠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듣기 전에 먼저 관계를 깊이 있게 하는 교제의 삶,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이 된다면

이 땅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나를 향한 속삭임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고보니

말씀하시지 않음이 아니라 못 듣고 있는 것이구나.

그 분의 언어를 배우고

그 분의 억양을 알아가고

그 분의 성향을 깨닫고

그 분의 의도를 밝혀낸다면

그래서 그 분의 삶과 이야기, 

그 분 자신이 내 안에 통채로 익숙하게 자리잡고서야

그때서야 잘 듣게 될 수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 땅에서 영어를 잘 배우는 비결은

많이 듣고, 외국인들과 많이 만나 이야기하는 것이라지요.

더 실력을 높이려면 그에 걸맞는 과정이 필요하겠지요.


한 가지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외국에 오래 산다고 영어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언어인 말씀도 많이 듣고

하나님과 말씀으로 만나서 이야기하며

필요하면 더 깊은 영역에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임도 깨닫습니다.


믿음의 선배들 역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고 믿음 좋은 것,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래저래 무엇인가를 익숙하도록 배우는데에는

불편함, 아쉬움, 힘들고, 버거움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어느날 익숙함으로 열매 맺듯이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러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러한 날을 위해서

우리 안에서 말씀과 묵상이 호흡하듯

일상의 자연스러운 일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어느날 애쓰지 않아도 하나님의 언어, 뜻, 계획, 마음들이

마음속에 자연스레 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육신의 욕망과 안일함, 게으름이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에

끊임없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언젠가 말씀묵상 세미나에서 나누었듯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영성의 삶이란

마치 세상이라는 아랫마을에서 영적 정상인 언덕위로 올라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언덕 중간 어디에선가 멈추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영성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언덕 중간에서 브레이크를 밝고 있음으로 해서

겨우 세상으로 떠내려가지 않은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언덕 정상에로 오르는 힘,

엑세레이터를 밟고 올라가는 그 힘은 말씀과 성령입니다.

하나님과의 익숙함, 동행입니다.


생각만해도 좋습니다.

우리 새생명교회 식구들을 통해서 만들어져 감을 알게되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