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저 ×를 죽여라!

  • 느헤미야강
  • 2016-01-03
  • 812 회
  • 1 건

저 ×를 죽여라!

저 ×에게 돌을 던져라!


벌거벗은 한 여인

양손에 돌을 든 성난 사람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침묵 침묵 침묵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어른부터 젊은이까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여자만 남았네.


나도 너를 정되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곳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죄가 드러난 사람과

아직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


단지 그 차이입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깊이 있게 교제하며 그 사람을 알게 되면,

결핍 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삶을 옥죄는 커다란 결핍을 가진 이도 있고,

소소한 결핍에 이르기까지 결핍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지나간 한해를 돌아볼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안타까웠던 부분들도

꽤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로 따뜻해졌던 마음이 결핍을 발견하는 순간,

가슴 한 켠이 답답해졌으며,

큰 한숨이 토해져 나왔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있을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무지 자신이 없습니다.


누가복음 1;1-17절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신 은혜입니다.


누가복음의 제사장 사가랴는 하나님 앞에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도 하나님의 계명을 흠 없이 따르는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힘든 삶의 결핍이 있었습니다.

불임으로 인한 자녀의 부재였습니다.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는 일로 여겨지지만,

당시 유대사회 문화에서 아이가 없음은 큰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심하게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까지 여겨지는 일이었습니다.


경건한 자에게도 부끄러움, 삶의 결핍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저와같은 사람에게 부족함 이란 말할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에 나타난 결핍 속에

하나님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계셨을까요?


나와 같이 부족하고 결핍이 많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숨겨져 있을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결핍 앞에

투정과 불만, 부정적인 언어,

심하면 스스로의 운명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는 결핍을 두고 기도합니다.


눅1;7절에 의하면 사가랴도 이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드려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핍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계획은

가만히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핍에 대해 투정하고 불평만 하고 있을 때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때,

자신의 비밀한 계획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역사하실 수 있지만,

특별히 기도하는 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나의 삶 속에 결핍을 발견하게 될 때,

나에게 왜 이런 일이 다가왔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할 때가 있습니다.

이유를 찾다보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종국에는 하나님에게까지 그 책임을 전가하며,

불평을 쏟아냅니다.

심하게는 악감정을 품고, 저주를 하게도 됩니다.


이것은 결핍 속에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핍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결핍을 발견할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 뜻을 구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감이 필요합니다.

그곳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는 오랜 기도의 끝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나게 됩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3절


삶의 결핍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저 역시 신앙 생활을 한다했지만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볼까 하는 마음을

온전히 품을 수 있었던 것도

삶의 결핍이 가장 강력한 원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한 후에도 돌아보면,

고난의 때에 하나님과 가장 친밀하게 지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 눈물로 기도하며,

통곡하며 탄원하였습니다.

기도의 간절함이 평소와는 달랐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때로는 저의 기도대로 인도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도 있었습니다.

반면에 안타깝지만,

저의 기도에 NO로 반응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NO하신 이유를 충분히 깨닫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셨기에

주님을 더욱 알아가는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삶의 결핍에 신앙적으로 반응하면,

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장입니다.

왜 결핍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밖에 없을까요?

영적으로 죽어있는, 무뎌져 있는 독립적인 사람에게

결핍의 충격이 아니면,

창조주에게 손을 내밀려하지 않으려는

강퍅함이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단순히 개인의 부끄러움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갔겠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그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덜어줄 한 아이를 구했지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은 예수님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기대도 못했던 일이고,

이런 일과 연관이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경 본문을 몇 번을 살펴봐도,

하나님 나라에 이 정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기도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결핍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지만,

하나님은 이를 구원의 역사에 사용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지혜를 가지고 계시고,

이것을 감당할 능력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핍을 두고 기도할 때,

어떻게 우리 안에 역사하실지 누구도 모르지만,

분명,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결핍을 위한 기도가 어떻게 이어질지,

이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실지 다 알 수 없습니다.

경건한 자는 기도할 뿐입니다.

기도로 열어갈 뿐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할 뿐입니다.

나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 멍순이 16-01-14
      좀더 주님과 가까워 지려면 결핍이 없이는 ......
      그렇게 또 하나님과 친밀해 지세요. 누군가 당신을 위해 기도 한다는것 잊지마시고...주님도 당신을 위해 기도 하다는것...결핍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아시기 때문에 더힘들 다는것 압니다...주님 그분 오직 한길이라 외로운 거예요...그래도 그분의 신실함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