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영적최전방은 거기다.

  • 느헤미야강
  • 20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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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7 마17;14-27절 묵상과 일기



처음 이곳에 왔을때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무엇을 가장 많이 잃어버렸을까?


기도시간을 많이 잃어버렸다.

나름대로 게으름과 나태하지 않도록

목회적으로나, 

목사로도, 

성도의 삶으로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기도시간이 줄었다.

단순히 시간만은 아니다.

설교준비시간만큼이나 기도하자던 마음도

많이 잃어버렸다,


내게 기도시간이 줄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차단시키는 것과 같다.

사순절에 경건과 절제의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회복해야 할 것이 기도임을 깨닫는다.


출애굽기 17장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현장에서 싸운 여호수아와 백성보다

기도했던 모세와 아론과 훌의 이야기처럼

영적 최전방은 싸움자리가 아니라 기도의 처소였다.


기도하는 사람은 역사의 조연이 아니었다.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움직였다.


기도에 승리하는 교회,

교회안에서 영향력있는 사람들의 기도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신다.

적어도 영적리더십이란

내 기도를 겨우 하는 정도에서 머물수는 없다.


오늘 본문 마17;14-21절을 묵상하면서 든 생각들이다.


귀신 들린 한 아이들 제자들이 고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꼭 오늘날 목사로 사는 사람이나

교회 공동체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이다.

기도는 있는데 능력과 권세는 안나타난다.

성경은 분명이 예수 그리스를 믿으면 하나님자녀의 권세가 있다고 하셨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선언하는

예수 이름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은과 금은 많아졌으나

예수 이름의 권세를 잃어버렸다.


17;16절에 비극적인 한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목사님께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내가 문제를 가지고 나와도 능히 해결하지 못하더라.


문제는 문제가 내 앞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 더 문제다.


기도는 있는데 능력이 없다.

홍수 만 데 마실 물 없다.

하나님의 능력은 변함없는데

진정으로 예수를 만나지 못함때문은 아닌가?


2천년전의 이 탄식소리는 오는 나의 탄식으로 들려온다.

나는 왜 안되는가?

우리는 왜 안되는가?

복음은 있는데 왜 이렇게 무기력한가?


주님이 말씀하신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20절)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어도 가능하다는데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 불가능이 있다.


마17;21절은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마태가 참조한 사본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다른 사본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29절을 보면

“기도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했다.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삶을,

내 신앙을,

내 꿈을,

내 소원을,

내 비전을,

내 가정을,

내 사업을,

기도로 하나님의 권능에 접속하는 일!


마17;21절의 ‘없음’이

내 마음에도 ‘없음’으로 있었는가 보다.


먼저 나부터 하나님의 권능과 단절됨은 없는지

시간에서부터 하나님에 접속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살펴야겠다.

그리고 교회안에서도 리더십부터 모든 이들에게 이르기까지

기도가 삶이고 능력의 원천이 되도록 모종의 전략(?)을 세워야겠다.

밥먹고 잠자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만들어 가야겠다.


초고속 인터넷이 범람하는 세대속에서

정보의 빠름도 중요하지만 상대

폭넓은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낙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세상과의 소통에도 빠름과 정확함이 중요하나

한 인생을 더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끄시며

영혼까지 책임지시는 분,

자녀삼으시고 권세까지 주시는 하나님과의 소통에

막힘이 없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