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그렇게 기적이 임했습니다.

  • 느헤미야강
  • 2015-08-09
  • 1,015 회
  • 1 건
1.
 
정말 이곳이 힘든 곳인가?
척박한 땅!
고달픈 삶!
광야같은 삶!
다시 한 번 이 땅을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에게도 광야는 있었다.
 
힘든게 많아서 광야였을까?
어려움만 주었기에 광야였을까?
길이 없어서?
물이 없고, 먹을 것이 부족해서?
뜨거운 햇빛, 얼어붙은 추위 때문에 광야였을까?
아니면
메마른 심령, 불평과 원망 때문이었을까?
 
광야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곳의 삶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나온 후 걸어가야 했던 길.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추운 곳.
광야이고 사막이니 먹을것이나 마실것도 부족했을 것이나
더욱 그들을 힘들게 했던것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을터.
 
그럼에도 광야의 삶 가운데서
먹을 것, 마실 것, 옷이며, 신발이며 헤어짐과 떨어짐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음에도 죄지었을때조차도 길을 잃지 않게 하신것.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
 
생각해보니 광야는 죽음과 저주의 장소가 아니라
불편함과 어려움만의 장소도 아니요,
어느곳보다도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멈춘곳마다 오아시스가 예비되어 있었고
길이 보이지 않고 덮고 추울때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니
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음이 없었던 곳.
매일 매일 만나를 거두게 하심으로 양식을 공급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알리셨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거칠고 험난하고 투박하며 생명의 위험도 도사린곳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하나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축복의 장소였음이 틀임없습니다.
 
그러니 광야는 환경이나 조건때문이 아니라
누가 함께 하고 있는 가의 문제였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그곳이 말씀대로 축복의 땅 일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넉넉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축복의 땅이고
하나님이 떠나시면 언제든지 가나안땅도
그들에게는 광야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사사시대 이야기,
분열왕국과 포로시대 이야기 였습니다.
 
그러다가 든 생각입니다.
만일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풍성하며 평안했다면
더 무릎꿇어 기도하고,
더 말씀가운데 살아가려고,
더 나를 살피며
더 이 땅과 사람들을 가슴에 품으며
하나님과 더 살아가려고 몸부림 칠 수 있었을까?
한 말씀 한 말씀 하나님께 귀기울이려 했을까?
말씀만이 전부라며 목숨걸듯이 묵상했을까?
 
풍요와 넉넉함 때문에 하나님을 종종 놓침보다
척박함이나 어려움 때문에 가끔식 하늘을 쳐다보아도
매 순간 하나님과 함께 함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더 살갑게 느끼고 깨닫게 된다면
오히려 그곳이 더 축복의 장소는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곳,
낯설고 어렵기만 한 이 땅이 버거움의 장소만이 아니구나.
사람도 정들면 낫다고 소중한 사람 한 분 한 분 붙여주셨으니,
하나님과의 동행함을 더 민감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으니
이곳이야먈로 축복의 땅이구나.
 
환경 때문에 행 불행이, 축복과 저주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가 아닌가가
내 삶의 방향을, 행복을 결정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니 그것이야 말로 기적이지 싶습니다.
그렇게 기적이 임했습니다.
 
 
2. 
 
와~, 대단하다!
이제 다른거 없어요?
5분 감동!
집에 언제가요?
역쉬 아빠야!
우와 아래가 이렇게 다르네요?
이게 나이아가라에 얽힌 우리 가족의 에피소트입니다.
 
2014년 작년 4월에 처음으로 보았더랬습니다.
얼음이 강 좌우에 펼쳐져 있고
거대하게 떨어지는 물과 안개는
위에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었습니다.
 
두 번째 아이들과 함께 본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본 폭포의 장관에
아이들의 표현이 압권입니다.
‘와! 대단하다.’
그러나 5분이면 족했습니다.
‘물 많음’.
‘폭포 넓음’.
‘미국땅 보임’.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잘못 가르쳤나 싶었습니다.
이렇게 삭막하고 무식한 놈들!
감동도 할 줄 모르는 놈들로 키웠나!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를 이렇게 모독하다니.
그건 나이아가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조금은 슬펐습니다.
 
세 번째 장모님과 처제, 조카가 캐나다를 방문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럽니다.
‘할머니, 이모!’
‘나이아가라 별로야!’
‘5분이면 끝이야.’
‘굳이 갈 필요없어.’
그렇잖아도 7인승인데 잘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번엔 배를 탔습니다.
‘유람선에서 본 나이아가라는
위에서 내려다 볼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감동은 열배도 더 되었습니다.
마치 영화를 찍은 듯한 모습과
거대한 폭포의 위엄앞에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네 번째 아이들을 다시 데리고 갔습니다.
아빠가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에게 해준 일 중에서
가장 큰 일을 하셨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짜식들!’
‘아빠를 뭘고 보고!’
‘느네 지난번에 5분 무심감동 생각나냐?’
............
 
그리고
한국의 ‘혼자서 산다’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출연자인
배우김용건과 1명의 젊은 친구가 나이아가라를 방문했습니다.
배도 탔지만
그들은 헬기도 탔더랬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김용건씨의 말입니다.
 
‘아래에서 배를 타고 본 나이아가라 폭포는
거대함과 경이로움을 주었는데
헬기를 타고 본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니 너무도 아름다운데
그 나이아가라도 작기만 한 것을 ...
그동안 너무 쳐다보고만 살았던 것은 아닌지 ...
왜 무엇인가를 잡으려고만 했었는지 ...
더 높게 더 넓게 세상을 보며 살아야 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땅에서 보는 것과
아래에서 보는 것
위에서 보는 것이 그렇게 다르구나.
 
사람도 사역도 교회도
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과 믿음의 크기를 더 하나님께 맞추어야 겠지 싶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니
내 마음이 기적을 살고 있는 것이구나.
 
그게 기적이지 싶었습니다.
그렇게 기적이 임했습니다.
 
나이아가라가 준 선물입니다.
 
 
3.
 
어렸을적 시골.
집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멀었던지!
개울은 얼마나 깊고 넓던지!
학교 운동장은 또 얼마나 컸는지!
뒷산은 왜 그리도 험하고 높던지!
 
다 큰 어른이 되어 가본 그곳!
 
거리는 가깝고,
개울은 도랑이 되어 있었으며,
운동장은 동네 큰 마당처럼,
그 험하고 높았던 산은
동네 뒷 동산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어디
길이며, 개울이며,
운동장과 산이 달라졌을까요?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작아 보인거지요.
내가 커지니 작아 보인거지요.
 
우리의 신앙도 그렇지 싶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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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멘 아멘입니다
        내게로부터 눈을들어 주를보기시작할때 주의 일을 보겠네
        모든시선을 주님께 드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떄 내삶은 주의 역사가되고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네
        이 찬양가사가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