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하나가 되는 공동체 구원의 감격과 거듭난 기쁨을 나누는 교회, 세상으로 파송 받은 삶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안전사고? 눈물샘 터지다

  • 느헤미야강
  • 201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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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어디 잊는다고 잊혀질 일인가요?
제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의 시작.
1992년 원주 동지방 사경회.
강사님의 첫 말씀때문이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도로 표지판을 잘 보아야 합니다.
좌회전, 우회전, 암석낙하지역 조심, 속도는 몇km 등등.
표지판을 잘 보고 주의하면 안전하지만 무시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길에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인을 주십니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면 안되는데...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면 언제든지 영적인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터진 눈물샘.
 
그렇게 시작된 목회의 길입니다.
돌아오니 하나님 사랑이 넓게,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돌아오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살게 했습니다.
돌아온 뒤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예비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주 사랑이 나를 숨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주 사랑이 나를 이끄시네
내가 갈 수 없는 그 곳으로
주의 사랑 나를 붙드시며
세상 끝날까지 인도하시네
 
주님만이 내 아픔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주님만이 내 능력이시며
주님만이 나의 구원이시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주님만이 내 아픔 아시며
주님만이 내 맘 어루만지네
어느 누구도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길을 잘못 들때가 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던 발걸음이나 차를 멈추고 다시 방향을 잡는 일입니다.
너무 많이 달려왔다고,
귀찮다고,
번거롭다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면
목적지는 점점 빗나가고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세상의 어느 길이든 차선이 두 개인 이유는
잘못되었을 때 다시 돌아가라는 뜻일 것입니다.
 
유대 땅에 흉년이 들자 나오미와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었는지 모압으로 이사를 갑니다.
모든게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나마 힘이 된 것은 믿음직한 남편과 두 아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요?
얼마 안 되어 하늘같던 남편이 죽고,
두 아들마저 따라 죽게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늙은 몸이 된 자신과 앞길이 구만리 같은 두 며느리들이었습니다.
유대사회에서 남자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간과하더라도
남편을 잃은 과부 셋이 살아갈 길이란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베들레헴에서,
삶의 터전에서,
조상때부터 자신이 믿어왔던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이토록 어려운 일도 없었을지도 모를일,
행여나 베들레헴에서도 같은 일을 당했다할지라도
이웃들의 말과 따듯한 시선은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날,
나오미는 귀한 소식을 듣습니다.
유대 땅에 하나님께서 먹을 양식을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순간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떠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돌아 갈 곳이 있다는게 그나마 행복이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멀지만 마음을 다지고 몸을 추스려 일어납니다.
아직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가득했지만 아무런 희망도 꿈도 없던 한 여인이
다 잃고 쓰러진 그 곳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녀에게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런 그녀의 귀향길엔 이미 하나님 사랑의 그늘이 넓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보아스와 다윗가문을...
 
한 때 누구나 길을 잘못 들 수 있습니다.
실패하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꼭 기억해야 할 것 하나가 있습니다.
쓰러진 곳, 실패한 곳에서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힘들지라도 그때에 상상도 못했던,
꿈꾸지도 못했던 놀라운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힘들다고, 다르다고 함부로 삶의 터전을 떠날일이 아닙니다.
신앙의 여정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떠난 길 잘못 들었다 싶으면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든 늦는 법이 없습니다.
나오미를 돌아오게 하셨고 예비하심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오게 하셨으니 예비하심이 있을 것입니다.
돌아와 보면 예비하심이 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때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새벽예배의 말씀이 룻기입니다.
나오미, 룻기를 통해서 다시 회복의 길을 찾아봅니다.
 
돌아와야 할 것,
회복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든
돌아오면 알게 될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1;7)